이산화탄소 혼수와 응급실의 데자뷔

곽경훈
곽경훈 인증된 계정 · 작가 겸 의사
2023/02/23
버스를 놓치다
직장을 옮긴 후, 가장 먼저 와닿은 '수도권의 장점'은 대중교통이다. 지방에 자리한 중소도시는 말할 것도 없고 광역시조차 대중교통의 도달범위와 편의성에서 수도권과 비교하기 힘들다. 특히 '버스전용차로'는 놀랍다. 그 덕분에 집과 병원 사이의 거리가 상당함에도 출근과 퇴근이 그리 어렵지 않다. 환승은 한 번만 필요하고 다양한 버스가 같은 노선을 운행해서 기다리는 시간도 길지 않다.

하지만 버스를 놓치면, 특히 환승정류장에서 간발의 차이로 놓치면, 기분이 좋을 수 없다. 휴대폰을 울리는 낯선 전화번호를 망설인 끝에 받았는데 유쾌하지 않은 통화가 이어지고 그런 이유로 버스를 놓치면 정말 화가 치민다.

"신경과 XXX입니다. 혹시 선생님이 OOO환자를 우리 임상과로 입원시키라고 노트(의무기록을 의미한다)를 남기셨나요?"

OOO환자는 퇴근 직전까지 담당한 환자다. 중환자였고 진단이 쉽지 않았지만 깔끔하게 정리한 후에 퇴근했다고 생각한 터라 의아했다. 미처 찾아내지 못한 문제, 그것도 아주 심각한 문제가 뒤늦게 밝혀진 것인지 불안이 밀려왔다. 그런 일이 아니고서는 전문의가 다른 임상과 전문의에게 전화해서 따지는 경우가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네, 제가 남겼습니다. cerebellar ataxia(소뇌실조증)으로 최근 우리병원 RM(재활의학과)에서 퇴원했고 당시부터 폐렴이 있던 환자입니다. 또, 현재 체중이 35kg이며 거동이 가능하지 않고 팔다리의 근육 자체가 많이 사라진 상태입니다. 의식저하가 발생하여 내원했고 통증에도 반응하지 않는 단계였지만 Brain CT/MRI에서 뇌졸중에 해당하는 변화는 없었습니다. chest CT에 경미한 폐렴이 있지만 재활의학과에 입원했을 당시와 비교하면 악화했다고 판단하기는 어렵습니다. 또, 폐렴이 의식저하를 만들 정도는 아닙니다. 다만 동맥혈액가스검사에서 CO2(이산화탄소)가 크게 증가했습니다. 보셔서 알겠지만 140까지 증가해서 CO2 retension으로 인한 의식변화일 가능성이 큽니다. 사실 CO2 narcos...
곽경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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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권의 메디컬에세이를 쓴 작가 겸 의사입니다. 쓸데없이 딴지걸고 독설을 퍼붓는 취미가 있습니다. <응급실의 소크라테스>, <응급의학과 곽경훈입니다>, <반항하는 의사들>, <날마다 응급실>, <의사 노빈손과 위기일발 응급의료센터> 등의 책을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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