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금숙 만화 <지슬> : 제주 4.3의 끝나지 않은 이야기

신승아
신승아 · 삐딱하고 멜랑콜리한 지구별 시민
2023/08/26

사람은 민족 소속이 아니라 이념 소속이다. 좌익이냐 우익이냐, 사회주의냐 자유주의냐에 따라 존재의 정체성이 규정되고 적과 아군으로 나눠진다. 한반도의 현대사를 보자. 1945년 해방 이후 일장기가 나부끼던 자리를 성조기가 꿰찼다. 동포 팔아 잇속 챙기던 친일파는 친미파로 돌아섰고, 독립군 때려잡던 친일 경찰들이 빨갱이를 색출한답시고 무고한 자들을 좌익으로 몰아갔다. 그 난리 통에 UN이 남한만의 총 선거를 지지하면서 분단은 거의 확실시되었다.

피는 물보다 진하고 이념은 피보다 진하다. 일제 식민치하 때부터 이어져 온 사회주의자와 민족주의자들의 첨예한 대립은 곪을 대로 곪아 있었다. 독립운동과 관련된 행사에 두 집단이 따로 모이거나, 같이 참여해도 떨어져 앉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나날이 깊어지던 갈등의 골은 1947년 3월 1일, 제주시에서 열린 3.1절 기념행사에서 폭발하고 만다. 행사 당일 군중들 틈에 끼여 있던 어린이 한 명이 경찰의 말발굽에 치여 쓰러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성난 제주도민들은 경찰서로 항의하러 갔다. 그러나 이를 사회주의자들의 습격이라고 판단한 경찰은 도민들을 향해 총알을 난사하여 6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바로 이때 이 사건이 후일 제주 4.3의 동인으로 작용한다. 

잘 살아보려는 노력과 달리, 제주는 악화일로를 걸었다. 빼앗긴 나라를 되찾은 후 토박이들이 돌아오면서 20만 명이었던 인구가 26만 명으로 급증한 가운데, 최악의 대흉년이 섬을 강타했다. 설상가상 미 군정은 공출제도까지 부활시켜 척박한 중산간 마을에서 풍족한 해안 마을과 동일한 양의 곡식을 가져갔다. 산속에서 굶주림에 허덕이던 사람들은 매일 곡소리를 냈다. 주민들의 불만이 산처럼 쌓이면서 이북 출신 극우 단체 '서북청년단'과 육지 경찰들이 끊임없이 내려왔다. 육지 사람들은 제주도민들을 단 하나의 집단으로 엮었다. '이 섬에 모인 놈들은 죄다 빨갱이다.' 실체 없는 명제가 진실로 둔갑하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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