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를 강타한 고독한 영혼의 상징, 전혜린(田惠麟, 1934~1965)
어떤 날 - 전혜린(1960년 7월 25일)
나의 운명이 고독이라면,
그렇다, 그것도 좋다.
이 거대한 도회의 기구 속에서
나는 허무를 뼛속까지 씹어보자.
몇 번씩 몇 번씩
나는 죽고 죽음 속에서,
또 새로운 누에가 눈뜨듯
또 한 번,
또 한 번!
하면서
나는 고쳐 사는 것이다.
다시 더!
하고 소리치며
나는 웃고 다시 사는 것이다.
과거는 그림자 같은 것, 창백한 것,
본질은 나이고
현실은, 태양은 나인 것이다.
모든 것은 나의 분신,
자아의 반사에 불과했던 것이다.
아버지와 딸
아버지는 딸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소공녀처럼 귀하게 키운 아이가 이제 곧 독일로 유학을 떠난다. 고단한 숲 속 길을 홀로 걷게 내버려둔 것처럼 딸이 안쓰럽게 느껴졌다. 어렸을 때부터 자신의 기대와 요구에 한 치도 벗어남이 없었던 딸이었다. 딸은 다른 아이들보다 일찍 말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