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의 질병'

곽경훈
곽경훈 인증된 계정 · 작가 겸 의사
2023/03/09
조카와 삼촌

희끗희끗한 머리카락과 눈가 주름은 아무리 노력해도 숨기기 어려웠다. 가르마를 타서 왼쪽으로 단정하게 넘긴 머리카락, 잘 손질한 콧수염과 턱수염은 20년 전 혁명에 나설 때와 차이가 없었으나 세월의 흐름은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예순을 넘긴 나이에도 그는 황제다운 풍채를 잃지 않았다. 군복을 입고 가슴에 훈장을 달고 화려하게 장식한 검을 허리에 차자 '훌륭한 장군'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는 거울에 비친 모습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전장에 잔뼈가 굵은 '훌륭한 장군'처럼 보였으나 그 이상을 원했기 때문이다. 그는 '위대한 장군'처럼 보이고 싶었다. 

그러면서 삼촌을 떠올렸다. 마지막으로 삼촌을 뵌 후, 벌써 6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으나 당장 어제 본 것처럼 또렸했다. 탈모를 시작해서 넓어진 이마, 날카로우나 신경질적인 눈매, 얇은 입술, 작달막한 키와 배가 약간 나온 왜소한 체형, 삼촌은 황제와 군인 모두에 어울리지 않는 외모를 지녔다. 그러나 삼촌에게는 모두를 압도하는 불가사의한 힘이 있었다. 포탄이 터지고 총알이 밧발치는 전장에서나 점잖빼는 귀족으로 가득한 궁정에서나 삼촌은 모두를 압도했다. 삼촌이 강렬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입술에 굳게 다물면 누구도 선뜻 침묵을 깨뜨리지 못했다. '해방자이며 정복자', '교황이 든 왕관을 빼앗아 스스로 대관한 남자', 적들조차 삼촌을 두려워하며 경외했다. 그도 삼촌처럼 '공화국의 우두머리'에 올랐다가 스스로 쿠데타를 일으켜 황제가 되었으나 모든 유럽인이 '황제'란 단어를 들으면 떠올리는 '나폴레옹'은 그가 아니라 삼촌이다. 

그래서 삼촌의 그림자에서 벗어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영국과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동맹국으로 크림전쟁에 참전하여 러시아 제국을 물리쳤다. 또 샤르데나 왕국을 도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을 물리쳐 이탈리아의 통일일 이끌었다. 그러나 그런 소소한 승리로는 삼촌을 따라잡을 수 없었다. '위대한 나폴레옹'이란 말에 삼촌인 나폴레옹 1세 대신 나폴레옹 3세를 떠올리게 만들려면 더 큰 영...
곽경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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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권의 메디컬에세이를 쓴 작가 겸 의사입니다. 쓸데없이 딴지걸고 독설을 퍼붓는 취미가 있습니다. <응급실의 소크라테스>, <응급의학과 곽경훈입니다>, <반항하는 의사들>, <날마다 응급실>, <의사 노빈손과 위기일발 응급의료센터> 등의 책을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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