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충이는 솔잎이나 먹어야지

진영
진영 · 해발 700미터에 삽니다
2024/04/24
옥수수 모종을 400포기나 샀다. 약간 정신이 나갔다고 봐야겠지. 무슨 베짱으로 이런 어처구니 없는 짓을 태연하게 저질렀을까.
인간은, 아니 나는. 아니 남편과 나는 망각의 동물임에 틀림이 없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한다.

이 말이 이렇게나 가슴에 와 닿을 줄 몰랐다. 옛말 하나도 틀린 것 없다더니 정말 딱 맞는 말이다.

초봄부터 갑자기 남편이 집 입구에 방치해 놨던 200평 가량의 땅을 개간하기 시작했다. 포크레인으로  마른 잡풀더미를 걷어내고 큰 돌도 치우고 말끔히 정리 한 다음 여기에 농사를 지을거라고 큰소리를 쳤다.
뭘 심을건데?
몇 년 전엔 들깨농사가 젤 쉽다는 소리를 듣고와서 들깨를 심었다가 털어서 들깨를 얻는 과정이 너무 힘들어 내 생애 절대 들깨농사는 없다고 선언을 하였고 이듬해 콩을 자급자족 하자는 꿈을 안고 서리태를 심었다가 풀밭인지 콩밭인지 구분이 안돼 결국 단 한 톨의 콩도 구경하지 못한 채 허무하게 꿈을 접지 않았던가.
그런 걸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이젠 더 넓은 곳에 농사를 짓겠다니.
거기다 나까지, 다른 작물은 힘에 부쳐 안되니 손 많이 안가는 옥수수나 심읍시다. 하고 장단을 맞췄다.
그동안 옥수수는, 50통을 앞 마당에 심었다가 수확 직전에 멧돼지가 다 먹어버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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