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립을 위하여

박선욱 · 시, 동화, 소설 및 평전을 씁니다.
2023/03/01
   
   
직립을 위하여
   
   
박선욱
   
   
처음에는 답답했지만
이제는 오히려 고맙다
허벅지에서부터 발끝까지
온통 하얗게 뒤덮고 있는
석고붕대
인위적인 고정장치가 실은
온종일 상처 부위에 달라붙어
혼신의 힘으로 치유를 앞당기려는
남모르는 노력임을
석고붕대 속 삐죽이 솟아난
발가락들은 알고 있다
한밤중의 동통 또한
완쾌를 알리는 신호임을
석고붕대는 그 공명통을 이용해
목관악기의 떨림음처럼 전해 준다
고마워라 고마워라 나는 읊조리며
시간의 조각들이 탈각을 알리는
그날, 나는 그러나
누에고치 속의 애벌레가 나방이 되듯
석고붕대를 털어 버릴 것이다
신선한 공기 속에서
바로 서기 위하여
   
(《월간조선》, 1991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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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실천문학》 으로 등단. 시집 《회색빛 베어지다》 《눈물의 깊이》 《풍찬노숙》, 인물이야기 《윤이상》 《김득신》 《백석》 《백동수》 《황병기》 《나는 윤이상이다》 《나는 강감찬이다》 등. 《윤이상 평전: 거장의 귀환》으로 제3회 롯데출판문화대상 본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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