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일야화》 혹은 미소를 남긴 체셔 고양이를 찾아

전업교양인
전업교양인 · 생계를 전폐하고 전업으로 교양에 힘씀
2024/04/02

원본 없는 역사, 체셔 고양이의 미소     

‘체셔 고양이의 미소’라는 게 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체셔 고양이는 사라졌지만 그 미소는 남았다는 구절이 출처다. 원본과 복제품에 관한 미학적 철학적 논의를 들을 때마다 그 구절을 떠올리곤 한다. 그리고 생각해 본다. 누군가는 “여기 미소는 남아있는데 그렇다면 체셔 고양이는 지금 어디 있지?”하고 물어볼 수 있지 않을까 하고. 

흔히 “아라비안 나이트”라고 부르는 《천일야화》의 역사는 조금 복잡하고 또 흥미롭다. 그 먼 기원을 따지자면 기원전 인도 지방에서 발생한 산스크리트어 설화문학 작품인 《판차탄트라》, ‘다섯 개의 이야기’가 출발점이다. 약간은 장황하고 교훈적인 이 설화 문학은 페르시아 지방으로 전해졌고 훗날 《칼릴라와 담나》로 알려진 번안, 개작 작품으로 이어진다. 

이 설화문학의 전승이 사산조 페르시아 시대에 구전 전승으로 이어졌다고 추정된다. 동생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현명한 여인 샤흐라자드의 이야기가 액자로 만들어졌고 그 이야기가 위대한 왕 샤흐리야르의 이야기로 보완되었던 것으로 보인다(왕의 이야기는 없는, 샤흐라자드와 동생의 이야기가 파편적으로 남아있다). 그리고 우리에게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필사본은 맘루크 왕조 시기에 해당되는 14 혹은 15세기의 것이다. 

몇 장 남아있지 않은 불완전한 필사본이 후일의 역사를 만들어낸 출발점이다. 18세기 초 ‘동방학자’ 앙투안 갈랑이 그 필사본을 프랑스어로 번역하기로 마음 먹었기 때문이다. 이 필사본이 체셔 고양이라고 한다면, 이제 그 미소는 몇 배로 증식하며 하늘을 가득 채워 버리게 되지만 그 덕분에 많은 사람들은 그 체셔 고양이가 어디로 갔는지 원래 어떤 모습이었는지 아무도 묻지 않게 되어 버린다. 이 글은 그 미소의 역사와 체셔 고양이의 정체에 관한 이야기이다.      

유럽을 사로잡은 동방의 이국적인 이야기      

갈랑의 성공에는 앞선 선배가 있었다. 샤를 페로의 『우화집』이다. 페로의 책을 낸 출판업자는 그 대성공을 이어가고 싶었고,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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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알아야 할 건 무엇인지 고민하다 자기 한 몸 추스리는 법을 잊어버린 가상의 존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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