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편지43] 랑랑이가 한 말

조은미
조은미 인증된 계정 · 읽고 쓰는 사람. 한강조합 공동대표
2024/01/18
어제 사회적협동조합 한강의 새해 첫 이사회가 열렸습니다. 작년 한 해의 활동을 돌아보고 올해 활동을 논의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어려운 시절을 잘 견디고 적자 없이 마무리할 수 있었던 것에 서로 고마워했습니다. 이사회에는 특별히 중랑천에서 온 고양이 랑랑이가 함께 참석했는데요. 랑랑이에게 중랑천에서의 생활이 어땠는지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한강 이사회에 함께 참석한 중랑천 구조 고양이 랑랑. 사람 곁을 좋아합니다.)
#랑랑이의 이야기
성탄절 아침이었습니다. 아침부터 흰 눈이 펑펑 내려 세상이 온통 하얗게 뒤덮였습니다. 저는 베란다 창을 통해 눈송이가 끝없이 감나무 가지 위로 쌓이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어요. 아침 밥을 먹고 나서 실내에서 눈 오는 풍경을 하염없이 보노라니 슬슬 졸음이 왔습니다. 어느새 스르르 잠이 들었어요. 

잠이 막 들었을 때, 주인이 다가오는 기척을 느꼈습니다.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어요. 그는 저를 안고 캐리어에 넣었습니다. 오늘 크리스마스네. 우리 한 번 나가 볼까. 

차를 타고 어디론가 한참 갔습니다. 크리스마스 파티에 데려가려는 걸까요. 깜짝 선물을 주려는 것일까요. 캐리어 속 낡은 모포 위에 앉아서 저는 스쳐가는 창 밖 풍경을 불안한 마음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차는 비포장 길을 지나 어디선가 멈췄습니다. 차문을 열자 차가운 냉기가 사방에서 밀려옵니다. 

그는 저를 데리고 묵묵히 걸었습니다. 흔들거리며 나아가는 동안 눈송이가 계속 그의 검은 몸과 제 사이를 비집고 떨어지다가 사라지곤 했습니다. 이 소풍은 어디까지일까. 어서 아늑한 집으로 돌아갔으면… 저는 소풍이 시작되기 전에 벌써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물 비린내가 훅 끼치는 강가에서 그는 멈췄습니다. 더러 쓰러지고 마른 갈대가 어지럽게 자란 강변에 저를 내려놓았습니다.
(중랑천에 사는 원앙의 자태가 아름답지요. 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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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생태를 가꾸고 강문화를 만들어가는 사회적협동조합 한강에서 일합니다. 읽고 쓰는 삶을 살며, 2011년부터 북클럽 문학의숲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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