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박하면서 슬슬 늙어가는 것이 느껴집니다만... - 충남 태안

토마토튀김
2024/06/03

오늘은 여기에서 자자.


서울에서 아침부터 짐을 챙겨 부랴부랴 태안으로 왔다. 소개를 받아 온 곳인데, 마을 굽이굽이 돌아서 포장도 되지 않은 길을 따라가니 이미 네비의 명령은 끝났다.
'어, 여기가 맞나?'
분명히 이 차박지를 소개해주신 분은 이곳이 물도 있고, 산도 뒤에서 포옥 감싸 안듯이 있는 곳이라 굉장히 아늑하다고, 분명히 차박 좋아하는 내가 마음에 들어 할 것 같다고 하셨다. 그러나, 정작 차를 몰고 들어오니 전혀 물이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3년 전, 내 생일날이었다. 경남 산청에서 마고할매 바위를 찾아간답시고 산 위를 무턱대고 운전해서 가다가 진짜 땀 줄줄 흘리며 후진해서 죽을 뻔하기 직전 내려온 경험이 있어서(초입에서 어떤 양치하던 할매가 나보고 저 산, 그냥 운전해서 올라가도 된다고 했는데, 아니었다. ㅠㅠ 그런데 그렇게 고생해서 수십 분 만에 내려오니 그 할매가 계속 양치하고 있어서 소름 끼쳤던 기억. 혹시 그 할매가 마고신 아니신가!?)  그런 연유로 나는 포장되지 않은 길, 산길 좁은 길에서 운전하는 것이 무섭다. 앞에 차를 돌려 나올 길이 없을까 봐서.  
그러나, 꾹 참고 앞으로 좀 더 전진해 들어가니 다행히 깔끔히 포장된 길이 나왔고, 해안가 바닷길을 따라서 옹기종기 차를 세워놓고 옆에 텐트를 친 차박객들이 보였다. 반가웠다! 어떻게 이런 '비밀의 화원' 같은 캠핑지가 있을까. 대학교 1학년 때던가 봤던 영화 <비밀의 화원>에도, 이야기는 다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이런 기분을 느끼게 해 준 장면이 있었다. 아픈 소년이 방안에만 갇혀 있다가 어느 소년, 소녀들의 도움을 받아서 처음으로 아름다운 화원을 보았을 때의 환희!

차박 세팅을 하고, 처음으로 테이블과 의자를 펴서 차 옆에 두었다. 그리고, 물은 많이 빠졌지만, 노을이 지는 바닷가를 바라보며 의자에 몸을 맡기고… 뽁, 뽁 하고 조용히 터지는 갯벌 소리가 좋다. 이제 조금 있으면 물이 찬다고 트럭 몰고 다니시며 만 원씩 걷고 다니시는 아저씨가 말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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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을 먹으며 글을 씁니다. 에세이집 <시나리오 쓰고 있네>, <아무 걱정 없이 오늘도 만두>, <어쩌다 태어났는데 엄마가 황서미>를 발간했습니다. 지금은 드라마와 영화 시나리오를 씁니다. 몰두하고 있습니다. 일 년 중 크리스마스를 제일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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