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초 골퍼 수난기

김형민
김형민 인증된 계정 · 역사 이야기 좋아하는 50대 직장인
2023/07/02
골프 왕초(王初) 수난기
.
골프를 야무지게 배워 보리라 즐겨 보리라 ‘결심’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이 좁은 나라에 무슨 골프장인가 하는 비분강개에 동의해서가 아니다. 골프가 사치스러운 운동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다만 배우는데 필요한 돈과 시간과 무엇보다 스트레스가 싫었을 뿐이다.
.
골프 말고도 할 것이 지천이고 놀 것이 태산이고 갈 데가 무한대인데 내가 왜 레슨비 갖다 바치고 연습장비 들여가며 “쥐구멍에 공 넣겠다고 난리치는” 걸 해야 한단 말인가. 정주영 회장 말마따나 “골프하고 자식은 마음대로 안된다.”던데 내가 왜 말 안듣는 자식과의 드잡이를 사서 경험해야 한단 말인가 말이다.

유튜브 골프 성수기

.
회사에서 명 받고 골프장에 나가 본 적은 있지만 “흠 당신은 골프보다는 필드 하키에 소질이 있군” 소리나 들었고, 골프 한 번 배워 보지 그러나 하는 진지한 질문에는 아주 쿨하게 “별론데요.”라고 답해서 윗사람의 인자한 미소를 얼어붙게 만드는 만용도 부렸다. 그런데 이번 봄에 갑자기 사장님의 문자가 왔다. 모월 모일 어디서 한 번 라운딩하자.
.
한 몇일 고민을 했다. 사장님 찾아가서 저 골프 못치니까 빼 주십시오 아니면 최소한 못치는 거 알아 두라고 고백하는 게 맞는 건가? 이 얘기를 친구들한테 물어 봤더니 다들 쌍심지를 켰다.
.
“이 미친놈아. 그냥 현장에 나가서 초보라고 고백하는 게 맞지. 미리 가서 그러면 나 너랑 치기 싫어 얘기 밖에 더 되냐. 이거 사회생활 어떻게 한 놈이야.” 아 그렇구나. 그럼 뭐 염치불구 나가야지. 아내에게 골프 일정 얘기를 했는데 아버지에게 소식이 들어간 모양.
.
산업일보

.
아버지의 전화가 왔다. “너 골프채는 있냐.” “그 왜 전에 아버지가 쓰시던 거 창고에 가면 있을 거 같아요.” 여기서 잠시 침묵. “야. 그거 니가 좀 보태면 40년 된 건데  그거 잘못하면 부러진다. 중고나 하나 사라.” “골프채가 부러지기도 해요? 하루 쓰고 말 건데 뭘.” ...
김형민
김형민 님이 만드는
차별화된 콘텐츠, 지금 바로 만나보세요.
이미 회원이신가요? 로그인
사학과는 나왔지만 역사 공부 깊이는 안한 하지만 역사 이야기 좋아하고 어줍잖은 글 쓰기 좋아하는 50대 직장인입니다.
273
팔로워 3.5K
팔로잉 3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