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따금 쓰지만 항상 쓴다고 생각합니다.” 오은 시인의 자기소개 글에서 볼 수 있는 표현입니다. 그는 ‘항상’의 세계 속에서 ‘이따금’의 출현을 기다린다고 얘기하는데요. ‘쓰는 행위’ 자체는 특정한 순간에 이뤄지지만 다른 모든 시간 또한 그 순간을 위한 생각과 행동들로 채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인만이 가질 수 있는 태도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일상 속 영감을 차곡차곡 쌓아뒀다가 업무 중 필요한 순간에 척척 꺼내 적용해보려고 노력했던 사람이라면 충분히 공감할 법한 이야기죠. 그런 면에서 우리 역시 어느 정도는 “직업이 아니라 상태”로서 일을 대한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오은 시인은 다양한 일을 많이 합니다. 시집과 산문집을 꾸준히 출간하고요. 틈틈이 칼럼을 쓰고 강연, 낭독회를 진행하고 또 참여합니다. 2018년 4월부터 팟캐스트 <책읽아웃> ‘오은의 옹기종기’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밖에 여러 프로젝트에 참여했고 창업도 했습니다. 심지어 세 번째 시집 『유에서 유』을 낼 때까진 회사원이었습니다.
시인과 시에 대해 궁금하시다면, 직업과 일에 대해 고민하신다면 오은 시인과 대화 나눠보는 것은 어떨까요?
@노이noi 안녕하세요. 시의 진입 장벽이 높은 이유는 우리가 그것을 완벽하게 이해하려고 해서가 아닐까 해요. 그야말로 장악하려고 하는 거죠. 초중고 교육을 받으면서 우리는 시어의 숨겨진 의미나 특정 행이 갖는 시적 맥락을 파악했잖아요. 저 또한 여전히 그 패턴에서 완벽하게 벗어나지 못했습니다만, 행간을 나만의 상상력으로 채우는 습관을 들이다 보니 나만의 방식으로 이해하는 게 가능해졌습니다. 이제 더 이상 시 읽고 문제를 풀지 않아도 되잖아요? 시를 나만의 방식으로 받아들이는 자세가 가장 중요할 듯싶어요. 마음에 드는 단어 찾기, 생각해볼 구절에 밑줄 긋기 등의 행동이 첫걸음이 될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불쑥 쓰고 싶어질지도 몰라요. 고맙습니다.
안녕하세요 오은 시인님! 인터뷰글 잘 보았습니다. 사회학을 공부한 이유와 시를 쓰는 이유에 대한 답변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제 질문은 시에 대한 진입장벽(?)에 관한 것입니다. 저는 짧은 글 보다 긴 글을 쓰는 게 더 편합니다. 시는 초등학생 때 학교에서 시켜서 쓰라고 했던 게 다인 것 같아요. 긴 호흡의 글도 결코 쉽다는 것은 아니지만, 짧은 글로 메세지를 전달하는 일이 왜 이리 큰 벽처럼 느껴지는지 모르겠습니다.
일반인들이 좀 더 가벼운 마음으로 시 쓰기와 친해질 수 있는 마음가짐이나 방법이 있을까요?
@주연이 좋은 질문은 하기도 힘들고, 거기에 걸맞은 좋은 대답을 하기도 어려운 듯싶어요. 하지만 할 때나 받을 때 더없이 기분 좋기도 하지요. 할 거나 받을 때는 미처 몰랐는데 나중에 보니 좋은 질문임을 깨달을 때도 있고요.
제가 생각하는 좋은 질문은 받는 사람으로 하여금 ‘돌아보게 하는’ 질문이에요. 나는 어떤 것에 끌리지?, 내게 어떤 일이 있었지?, 나는 어떤 사람이지? 등 무수한 ‘어떤’을 불러일으키는 질문이요. 그 과정에서 질문 받는 이가 자기 자신에게 좀 더 가까워지는 듯도 싶어요.
“작년에 읽은 책 중 가장 좋았던 책은?” 같은 질문도 크고 어려운 듯 보이지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작년 한 해를 돌아봐야 하겠지요. 자신이 끌리는 문장, 책, 분야 등을 파악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하고요.
질문 하나 던지겠습니다.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마음 편안해지는 장소가 있나요?” 고맙습니다.
은 시인님은 여러 인터뷰나 매체를 통해 질문을 ‘받는’ 사람이기도 하고, 팟캐스트나 모더레이터 등으로 질문을 ‘하는’ 사람이기도 하지요. 저는 공과 사 모두 대체로 ‘하는’ 사람이었는데, 최근에 뜻하지 않게 몇몇 질문을 받으면서 대답이 어렵다는 걸 새삼 깨달았어요. 대답을 위해 고민하는 시간도 귀히 여기게 되었고요. 시인님은 어떤 질문이 좋은 질문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시나 글에 관한 질문, 개인적인 질문, 타인의 문답 등 모든 분야를 통틀어 시인님이 생각하는 좋은 질문은 무엇인지 궁금해요. 보태어,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에게 (좋은) 질문을 하나 던져본다면요?
@kkomwall 반갑습니다. 아이디를 보니 누구신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책 읽는 계정을 보고 사람들은 제가 속독을 한다고 생각하는데, 생각만큼 읽는 속도가 빠르지는 않아요. 하지만 저는 대중교통으로 이동 중에는 늘 책을 읽는답니다. 운전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긴 틈을 책 읽는 시간으로 메운 셈이지요. 아침에 읽어나서 읽고 밤에 자기 전에 읽는 시간을 생각하니 하루 중 꽤 많은 시간을 읽기에 쓰고 있는 듯합니다.
빨리, 많이 읽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본인의 읽기 속도와 리듬 같아요. 저도 유독 천천히 읽게 되는 책들이 있어요. 책의 길이와 깊이와는 상관없이 '상념'이 중요한 책들이 있잖아요. 그런 책들은 머리맡에 두고 하루에 조금씩 읽어나갑니다. 비밀에 다가가는 신중한 발걸음을 떠올리면서요.
저 또한 시작은 창대하였으나 끝은 미약한 독서가 되는 경우가 왕왕 있어요. 저도 모르게 몰입한 나머지 생각보다 빨리 완독하게 되는 책도 있고요. 지금처럼 꼭꼭 씹어 드시듯 독서하시면 됩니다. 독서도 어쨌든 '소화'의 영역이니까요. 고맙습니다.
@bboo 좋은 시에 대한 질문은 번번이 어렵습니다. 실은, 시가 무엇인지도 점점 모르겠어요. 어떤 길을 내고 있다고 믿었는데, 그 길이 어디로 뻗어나가고 있는지 알 수 없으니 그렇겠지요. 그 알 수 없음 덕분에 어칠비칠하면서도 여전히 쓰는 삶을 살고 있는 듯도 합니다.
좋은 시는 누구나 볼 수 있는 것을 '다르게 본' 시가 아닐까 해요. 더 나아가서는 '다르게 본' 것을 '다르게 쓴' 시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두 번의 다름이 있으니 처음 읽을 때는 낯설겠지만, 그렇기에 읽을 때마다 새로운 게 보일 수 있을 거예요. 그렇습니다. 읽을 때마다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는 시가 제게는 좋은 시입니다.
쉬운 시만 읽어도 되지요. 하지만 반복해서 읽으면 처음에 받았던 그 느낌이 점점 옅어질 거예요. 어쩌면 이는 쉬움이 가지고 있는 한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다 보면 곰곰 생각하게 만드는 시, 읽는 이가 적극적으로 사고하게 만드는 시가 필요해질 거예요. 느긋하게 마음을 먹고 시간을 들여 시를 대하시면 좋겠어요. 이제 우리는 학교에서 시에 대한 시험을 보지 않아도 되잖아요. 고맙습니다.
@광부2020 아이쿠, 고맙습니다. 방송을 오래 하다 보니 제 여러 모습을 다 들키게 되었네요. 밝은 것도 저고 차분한 것도 저겠지요.
사람이 싫어지는 순간, 참 많지요? 마냥 좋다가도 갑자기 싫어질 때도 있고, 싫은 사람이 더 싫어지게 되는 경우도 부지기수고요. 저 또한 저의 옹졸함이 미울 때가 많은데요, 그것 또한 저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우리 안에는 무수한 우리'들'이 있으니까요.
사람이 싫어질 때, 저는 그 사람이 되어봅니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왜 그랬는지' 알기 위해서는 더 적극적으로 그 사람 입장을 헤아려야 되겠더라고요. 그러면 문제가 되었던 말과 행동이 조금은 이해가 되기도 해요. 물론 대부분의 경우는 실패로 돌아갑니다. 우리는 우리에서 벗어나기가 이렇게나 힘들답니다.
그럴 때면 마냥 걷습니다. 음악도 듣지 않고 생활 소음을 벗 삼아 큰길도 걷고 골목도 걸어요. 문제가 해결되지도 않았고 마음의 부피가 커지지도 않았는데, 어느 순간 그게 별로 중요해지지 않는 순간이 찾아오더라고요. 새소리를 듣고 불어오는 바람을 맞고 돌 틈에 솟아오른 풀 한 포기를 보는 나 자신만이 생생해지더라고요.
그런 날이면 뭔가를 메모합니다. 시가 될지는 알 수 없지만 나를 갑자기 멈추게 한 것, 나를 다시 움직이게 한 것을 기록하는 거지요. 시는 마음이 따뜻할 때 나오기도 하지만, 더 정확히는 마음이 움찔할 때, 꿈틀거릴 때 나오는 것 같아요. 고맙습니다.
@zxcv12 예전에는 한 권을 다 읽어야 다음 책으로 넘어가는 독서 패턴을 갖고 있었어요. 요즘은 두세 권 정도를 동시에 읽습니다. 일부러 그러는 것은 아니고 이동할 때는 아무래도 무거운 책을 가지고 다니기 힘드니까요. 카페에 비치된 소파에 앉아 읽는 책과 책상에 앉아서 집중하며 읽는 책도 다르고요. 두세 권을 동시에 읽으면 각 책의 내용이 모종의 화학작용(?)을 일으키는 순간이 찾아오는데요, 이 또한 독서의 즐거움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인스타그램의 책 읽는 계정은 동시에 읽고 있는 책 중 어느 것이라도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 업로드합니다. 발췌독을 위해 읽었던 책을 다시 읽는 경우를 제외하고 말입니다.
책을 고르고 소개할 때 중심에 두는 요소가 있습니다. 자극이 되었느냐, 한 단어 한 문장이라도 낯설게 다가왔느냐, 어떤 것에 대해 더 알아보고 싶게 만들었느냐 등입니다. 결국은 몸담고 있는 현장에서 이질감을 느끼게 해주는 책을 좋아하는 듯싶어요. 딱히 분야를 가리지도 않습니다. 요즘 사람들이 어떤 책에 끌리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부러 베스트셀러를 사서 읽기도 합니다. 책을 읽을 때만큼은 최대한 너그러워져요. 그래야 그 책에서 뭐라도 발견할 수 있으니까요. 매의 눈으로 비판할 요소를 잡아내기보다는 어떤 마음으로 이 단어를 고르고 저 문장을 완성했는지 헤아리는 게 좋아요. 고맙습니다.
@박새우 프랑소와 엄 님과의 케미를 기억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책읽아웃을 꾸준히 들어주신 분들께는 늘 벅찬 고마움을 품고 있답니다.
직장 다닐 때, 직장인에서 시인으로의 전환이 쉽지 않았습니다. 이러다가 한 줄도 못 쓰는 게 아닐까 걱정이 되어 스스로 루틴을 만들었어요. 토요일은 직장인에서 시인으로 건너가는 날로 정해서 많이 걷고 보고 듣고 상상하고 메모했습니다. 일요일에는 (웬만하면 약속을 잡지 않고) 종일 자리에 앉아 시를 썼어요. 당연히 처음에는 잘 안 됐지요. 인간은 모름지기 쉬고 싶어 하는 존재잖아요. 그때 몸을 일으키고 바깥에 나가서 자리를 잡고 랩톱을 켜고 묵묵히 썼던 것이, 저를 지금껏 쓰게 하는 동력이 된 듯싶습니다.
남들 하는 것 다 하면서 꾸준히 쓰는 일은 어려운 것 같아요. 저는 취미 몇 개를 기꺼이 포기하면서 읽고 쓰는 데 집중했거든요. 그래서인지 시간을 확보했다는 느낌보다는 가까스로 시간을 낸 느낌이었어요. 길을 내듯 내가 낸 시간에 내가 좋아하는 일을 했던 셈이죠. 고맙습니다.
우리가 시를 간절히 원할 때 시는 더 멀리 달아나는 것 같습니다. 또 우리 사회에 시가 필요한 순간이 왔을 때, 우리는 시와 또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습니다. 오은 시인께서는 미디어 활동 뿐만 아니라 시민들과 독자들과 소통과 교섭을 활발하게 하고 있는 이유는 시와 세상 사이의 격차 혹은 이격을 줄이는 노력이라 생각합니다. 시를 친근하게 해주고, 또 그 좋은 것을 놓치고 있는 우리가 이따금이나마 시를 맛보게 해주는 일에 열심이신 듯 합니다.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시를 놓치지 않기 위해, 또 더 멀리 떠나가지 않기 위해 시인들과 독자들은 어떤 노력을 기울여여 할까요?
@hsmanim 시든 산문이든, 글을 쓸 때마다 제가 생각하는 게 있습니다. 바로 '한 끗'입니다. 세상을 놀랠 글을 쓰겠다는 포부에 젖어 부끄러운 글을 쓸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제가 발 딛고 서 있는 여기를 다르게 보려고 애씁니다. 다르게 본 것을 다르게 쓰려고 노력합니다. 글에 깃든 저의 시선이나 그것을 옮긴 문장에 '한 끗'이라도 다른 게 있는지 살펴봅니다. 그게 글의 개성을, 작가의 스타일을 만들어준다고 생각하거든요.
독자의 존재를 염두에 두지 않는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겁니다. 글이 발행되고 책이 출간되면, 그때는 이미 제 손을 떠난 게 되기 때문이에요.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는 일이 없도록, 소수자나 약자가 읽어도 상처받지 않을 글을 쓰려고 합니다. 초고를 다 쓰고 나서 표현 하나하나를 세심하게 살피는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 시든 산문이든 '한 끗' 다르게 쓰는 일이 참 어렵더라고요. 그런데 제가 이렇게 오랫동안 글을 쓰는 데에는, 어쩌면 그 어려움이 큰 동력이 되지 않았나 해요. 쉽다고 생각하거나 이제 좀 알 것 같다고 겉넘을 때, 사람은 실수하게 마련이잖아요.
'한 끗'을 생각하시면 좋겠습니다. 한 끗에서 개성이 나옵니다. 고맙습니다.
@웃는식 안녕하세요, 오랜만입니다. 반갑습니다. 프리랜서 생활이 길어지면서 '휴일=글쓰기' 공식이 그만 깨져버리고 말았습니다. 제 계획대로 일정이 조율되지 않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요즘은 틈만 나면 읽고 씁니다. 저는 이동할 때 대중교통을 이용하는데 버스나 지하철 안에 있는 시간은 '읽는 시간'입니다. 강연이나 사회를 보러 간 행사장 근처 카페에서 보내는 시간은 '쓰는 시간'입니다. 산책할 때 틈틈이 적어둔 메모가 쓰는 일을 가능하게 해줍니다. 최근 몇 년간 발표한 시와 산문 중 상당수는 길 위에서 쓰인 것입니다.
낯선 이에게 다가가는 일은 저 또한 어렵습니다. 그러나 낯설다는 것은 낯익어질 때까지 그만큼 알 수 있는 부분이 많다는 것이기도 하잖아요. 기본적으로 호기심이 많기도 하지만, 낯선 이를 마주할 때면 그래서 더더욱 상대를 궁금해하려고 노력합니다. 궁금한 게 없으면 대화는 겉돌 수밖에 없으니까요. 공통점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마음으로 대화를 시작합니다. 호기심은 곧 애정이잖아요, 애정을 보이는 상대에게 차갑게 대응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거예요. 궁금해한다는, 상대를 알고 싶어 한다는 진심을 보여주세요. 고맙습니다.
오은 시인은 시보다 먼저 얼굴을 알게 된 분입니다. 몇 년 전 어떤 자리에 가보니 시인이라고 소개된 분이 너무 재밌게, 또 다정하게 말씀을 잘 하시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사회활동가, 그리고 흠모하는 예술가들과 격의 없이 이야기 나누시는 시인의 모습을 보고 시집도 찾아보게 됐습니다. 공교롭게 제가 믿고 신뢰하는 단체나 모임에서 주최하는 행사에 오은 시인이 자추 초청되더군요. 그래서 더 좋은 마음과 믿음이 생겼습니다.
그런데요, 우리나라에서는 본업 외에 다른 활동을 많이 하는 아티스트를 다짜고짜 폄하하거나 격하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더구나 정치적인 색이 가미된 활동을 조금이라도 하게 되면 더 그런 편이지요. 이런 말씀을 듣지 않기 어려울 정도로 오은 시인께서는 미디어에 노출이 많이 되는 편인데요. 이럴 때 어떤 생각이 드실까요? 사람들의 마뜩찮은 시선과 불신을 어떻게 상대하고 또 이겨내는지 궁금합니다. 오은 시인님을 응원하고 지지합니다.
@kkomwall 반갑습니다. 아이디를 보니 누구신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책 읽는 계정을 보고 사람들은 제가 속독을 한다고 생각하는데, 생각만큼 읽는 속도가 빠르지는 않아요. 하지만 저는 대중교통으로 이동 중에는 늘 책을 읽는답니다. 운전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긴 틈을 책 읽는 시간으로 메운 셈이지요. 아침에 읽어나서 읽고 밤에 자기 전에 읽는 시간을 생각하니 하루 중 꽤 많은 시간을 읽기에 쓰고 있는 듯합니다.
빨리, 많이 읽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본인의 읽기 속도와 리듬 같아요. 저도 유독 천천히 읽게 되는 책들이 있어요. 책의 길이와 깊이와는 상관없이 '상념'이 중요한 책들이 있잖아요. 그런 책들은 머리맡에 두고 하루에 조금씩 읽어나갑니다. 비밀에 다가가는 신중한 발걸음을 떠올리면서요.
저 또한 시작은 창대하였으나 끝은 미약한 독서가 되는 경우가 왕왕 있어요. 저도 모르게 몰입한 나머지 생각보다 빨리 완독하게 되는 책도 있고요. 지금처럼 꼭꼭 씹어 드시듯 독서하시면 됩니다. 독서도 어쨌든 '소화'의 영역이니까요. 고맙습니다.
@eun00 아, 정말 어려운 질문이에요. 제 편견을 깨준 출연자, 저와 대화 궁합이 유독 잘 맞았던 출연자, 대화가 끝나고 나서 유난히 여운이 길었던 출연자 등 한 분 한 분이 다 소중합니다. '주마등'이라는 진부한 표현을 안 쓰려고 하는데, 지금도 머릿속으로 출연자들의 얼굴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헤헤.
한 분만 고르자면 김혜순 시인을 꼽겠습니다. 선생님과 밀도 있는 대화를 처음 나눈 때이기도 하고, 말씀을 들을 때마다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던 날이었거든요. 한 가지 일을 오랫동안 한 사람만 가질 수 있는 신념과 태도가 오랫동안 기억에 남기도 했어요. 문학의 등불을 눈앞에서 생생하게 마주한 기분이었습니다. 천천히 오래 써야겠다고 다짐한 날이기도 했어요.
말수가 적은 게스트가 출연하면 난감하지요. 실제로 단답형으로 대답하거나 (현장에서 던진 즉흥 질문에) 적잖이 당황하시는 분들도 계시거든요. 그런데 그것 또한 좋은 대화로 가는 여정이라는 생각을 갖게 됐어요. 일상적인 질문에서 출발하자, 답하기 쉬운 질문부터 던져보자, 아직은 얼어붙어 있는 상대의 마음을 천천히 열어젖혀보자 하는 마음으로 대화에 임합니다. 그러다 보면 눈 녹듯 대화의 실마리가 풀리기 시작하더라고요.
어쩌면 말수가 적은 것은 성정이기도 하지만, 제가 대화의 물꼬를 잘 트지 못해서 일지도 모르잖아요.
책읽아웃을 오래 진행하니, '쉬운 대화'는 없다, 불가능하다는 확신이 들더라고요. 대화가 잘 안 풀릴 때면 흘러가는 것들을 생각합니다. 물, 구름, 시간 같은 것이요. 이야기에 자주 쓰는 동사가 '흘러가다'잖아요. 말의 흐름을, 상대 눈빛의 흐름을, 분위기의 흐름을 생각하지요. 그러다 보면 머뭇거리듯 다음 말이 나오더라고요. 고맙습니다.
@김진후 작가들에게 가장 필요한 지원은 아무래도 경제적 지원이 아닐까 해요. 작가라고 해서 무조건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을 받아야 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도서관에서 운영하는 상주 작가 제도나 창작 지원금 사업 등 작가들에게 도움이 되는 사업을 떠올려봅니다. 글을 쓰면서도 (당분간이지만) 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는 데 많은 작가들이 안도할 수 있었지요.
작은 서점 지원 사업의 예산이 사라진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도서관 지원 사업의 예산이 삭감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우울해졌습니다. 작은 서점 혹은 도서관에서의 낭독회나 북 토크 행사는 독자와 작가가 만나는 장입니다. 작가 입장에서는 독자를 실제로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고, 독자는 작가에게 평소 궁금해했던 것에 대해 질문을 던질 수 있습니다. 행사가 벌어지는 서점과 도서관은 '책'으로 매개될 수 있는 가능성의 현장이 되고요.
작가들을 위한 창작 지원, 작은 서점과 도서관이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진행할 수 있는 경제적 지원이 계속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생활이 사라진 자리에서 좋은 문학이 나올 수 있다는 말을, 저는 믿지 않습니다. 고맙습니다.
@QOQO98 작가 활동을 하며 가장 곤혹스러운 일은, 제가 글쓰기를 하고 있지 못할 때입니다. 저는 여전히 '쓰는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이 가장 강한데, 여기저기서 말하는 일이 많아지다 보니 실제로 쓰는 시간을 내는 게 쉽지 않아졌어요. 쓰기 이전과 이후에 들이는 시간도 필요하기 때문에, 갈수록 쓰기에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써야겠다고 다짐하고 있습니다.
왜 이런 시를 쓰느냐, 더 친절하게 쓸 수 없느냐, 시인인데 왜 말을 잘하느냐 등 현장에서 튀어나오곤 하는 무례한 질문들 앞에서 무기력해질 때도 있습니다. 그때마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의 속은 모른다"라는 속담을 떠올려요. 이해했다고 생각할 때조차 (이해했다고) 오해하고 있는 게 사람이잖아요. 그것이 시나 소설 등의 형태로 발화될 때 당연히 완벽하게 이해될 수는 없을 겁니다. 어쩌면 잘 오해하기 위해 우리는 쓰고 읽고 듣고 말하는 게 아닐까요? 고맙습니다.
@노이noi 안녕하세요. 시의 진입 장벽이 높은 이유는 우리가 그것을 완벽하게 이해하려고 해서가 아닐까 해요. 그야말로 장악하려고 하는 거죠. 초중고 교육을 받으면서 우리는 시어의 숨겨진 의미나 특정 행이 갖는 시적 맥락을 파악했잖아요. 저 또한 여전히 그 패턴에서 완벽하게 벗어나지 못했습니다만, 행간을 나만의 상상력으로 채우는 습관을 들이다 보니 나만의 방식으로 이해하는 게 가능해졌습니다. 이제 더 이상 시 읽고 문제를 풀지 않아도 되잖아요? 시를 나만의 방식으로 받아들이는 자세가 가장 중요할 듯싶어요. 마음에 드는 단어 찾기, 생각해볼 구절에 밑줄 긋기 등의 행동이 첫걸음이 될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불쑥 쓰고 싶어질지도 몰라요. 고맙습니다.
안녕하세요 오은 시인님! 인터뷰글 잘 보았습니다. 사회학을 공부한 이유와 시를 쓰는 이유에 대한 답변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제 질문은 시에 대한 진입장벽(?)에 관한 것입니다. 저는 짧은 글 보다 긴 글을 쓰는 게 더 편합니다. 시는 초등학생 때 학교에서 시켜서 쓰라고 했던 게 다인 것 같아요. 긴 호흡의 글도 결코 쉽다는 것은 아니지만, 짧은 글로 메세지를 전달하는 일이 왜 이리 큰 벽처럼 느껴지는지 모르겠습니다.
일반인들이 좀 더 가벼운 마음으로 시 쓰기와 친해질 수 있는 마음가짐이나 방법이 있을까요?
@주연이 좋은 질문은 하기도 힘들고, 거기에 걸맞은 좋은 대답을 하기도 어려운 듯싶어요. 하지만 할 때나 받을 때 더없이 기분 좋기도 하지요. 할 거나 받을 때는 미처 몰랐는데 나중에 보니 좋은 질문임을 깨달을 때도 있고요.
제가 생각하는 좋은 질문은 받는 사람으로 하여금 ‘돌아보게 하는’ 질문이에요. 나는 어떤 것에 끌리지?, 내게 어떤 일이 있었지?, 나는 어떤 사람이지? 등 무수한 ‘어떤’을 불러일으키는 질문이요. 그 과정에서 질문 받는 이가 자기 자신에게 좀 더 가까워지는 듯도 싶어요.
“작년에 읽은 책 중 가장 좋았던 책은?” 같은 질문도 크고 어려운 듯 보이지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작년 한 해를 돌아봐야 하겠지요. 자신이 끌리는 문장, 책, 분야 등을 파악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하고요.
질문 하나 던지겠습니다.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마음 편안해지는 장소가 있나요?” 고맙습니다.
<본인등판 3일 차 포인트 당첨자 발표>
오은 시인이 선정한 ‘좋은 질문’은 @kkomwall 님의 질문입니다. 다음 주 수요일(1/31) 5000포인트를 지급해 드릴 예정입니다.
좋은 질문과 답변이 오갈 수 있도록 관심 갖고 살펴봐 주신 얼룩커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은 시인님은 여러 인터뷰나 매체를 통해 질문을 ‘받는’ 사람이기도 하고, 팟캐스트나 모더레이터 등으로 질문을 ‘하는’ 사람이기도 하지요. 저는 공과 사 모두 대체로 ‘하는’ 사람이었는데, 최근에 뜻하지 않게 몇몇 질문을 받으면서 대답이 어렵다는 걸 새삼 깨달았어요. 대답을 위해 고민하는 시간도 귀히 여기게 되었고요. 시인님은 어떤 질문이 좋은 질문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시나 글에 관한 질문, 개인적인 질문, 타인의 문답 등 모든 분야를 통틀어 시인님이 생각하는 좋은 질문은 무엇인지 궁금해요. 보태어,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에게 (좋은) 질문을 하나 던져본다면요?
@kkomwall 반갑습니다. 아이디를 보니 누구신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책 읽는 계정을 보고 사람들은 제가 속독을 한다고 생각하는데, 생각만큼 읽는 속도가 빠르지는 않아요. 하지만 저는 대중교통으로 이동 중에는 늘 책을 읽는답니다. 운전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긴 틈을 책 읽는 시간으로 메운 셈이지요. 아침에 읽어나서 읽고 밤에 자기 전에 읽는 시간을 생각하니 하루 중 꽤 많은 시간을 읽기에 쓰고 있는 듯합니다.
빨리, 많이 읽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본인의 읽기 속도와 리듬 같아요. 저도 유독 천천히 읽게 되는 책들이 있어요. 책의 길이와 깊이와는 상관없이 '상념'이 중요한 책들이 있잖아요. 그런 책들은 머리맡에 두고 하루에 조금씩 읽어나갑니다. 비밀에 다가가는 신중한 발걸음을 떠올리면서요.
저 또한 시작은 창대하였으나 끝은 미약한 독서가 되는 경우가 왕왕 있어요. 저도 모르게 몰입한 나머지 생각보다 빨리 완독하게 되는 책도 있고요. 지금처럼 꼭꼭 씹어 드시듯 독서하시면 됩니다. 독서도 어쨌든 '소화'의 영역이니까요. 고맙습니다.
@bboo 좋은 시에 대한 질문은 번번이 어렵습니다. 실은, 시가 무엇인지도 점점 모르겠어요. 어떤 길을 내고 있다고 믿었는데, 그 길이 어디로 뻗어나가고 있는지 알 수 없으니 그렇겠지요. 그 알 수 없음 덕분에 어칠비칠하면서도 여전히 쓰는 삶을 살고 있는 듯도 합니다.
좋은 시는 누구나 볼 수 있는 것을 '다르게 본' 시가 아닐까 해요. 더 나아가서는 '다르게 본' 것을 '다르게 쓴' 시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두 번의 다름이 있으니 처음 읽을 때는 낯설겠지만, 그렇기에 읽을 때마다 새로운 게 보일 수 있을 거예요. 그렇습니다. 읽을 때마다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는 시가 제게는 좋은 시입니다.
쉬운 시만 읽어도 되지요. 하지만 반복해서 읽으면 처음에 받았던 그 느낌이 점점 옅어질 거예요. 어쩌면 이는 쉬움이 가지고 있는 한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다 보면 곰곰 생각하게 만드는 시, 읽는 이가 적극적으로 사고하게 만드는 시가 필요해질 거예요. 느긋하게 마음을 먹고 시간을 들여 시를 대하시면 좋겠어요. 이제 우리는 학교에서 시에 대한 시험을 보지 않아도 되잖아요. 고맙습니다.
@광부2020 아이쿠, 고맙습니다. 방송을 오래 하다 보니 제 여러 모습을 다 들키게 되었네요. 밝은 것도 저고 차분한 것도 저겠지요.
사람이 싫어지는 순간, 참 많지요? 마냥 좋다가도 갑자기 싫어질 때도 있고, 싫은 사람이 더 싫어지게 되는 경우도 부지기수고요. 저 또한 저의 옹졸함이 미울 때가 많은데요, 그것 또한 저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우리 안에는 무수한 우리'들'이 있으니까요.
사람이 싫어질 때, 저는 그 사람이 되어봅니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왜 그랬는지' 알기 위해서는 더 적극적으로 그 사람 입장을 헤아려야 되겠더라고요. 그러면 문제가 되었던 말과 행동이 조금은 이해가 되기도 해요. 물론 대부분의 경우는 실패로 돌아갑니다. 우리는 우리에서 벗어나기가 이렇게나 힘들답니다.
그럴 때면 마냥 걷습니다. 음악도 듣지 않고 생활 소음을 벗 삼아 큰길도 걷고 골목도 걸어요. 문제가 해결되지도 않았고 마음의 부피가 커지지도 않았는데, 어느 순간 그게 별로 중요해지지 않는 순간이 찾아오더라고요. 새소리를 듣고 불어오는 바람을 맞고 돌 틈에 솟아오른 풀 한 포기를 보는 나 자신만이 생생해지더라고요.
그런 날이면 뭔가를 메모합니다. 시가 될지는 알 수 없지만 나를 갑자기 멈추게 한 것, 나를 다시 움직이게 한 것을 기록하는 거지요. 시는 마음이 따뜻할 때 나오기도 하지만, 더 정확히는 마음이 움찔할 때, 꿈틀거릴 때 나오는 것 같아요. 고맙습니다.
@zxcv12 예전에는 한 권을 다 읽어야 다음 책으로 넘어가는 독서 패턴을 갖고 있었어요. 요즘은 두세 권 정도를 동시에 읽습니다. 일부러 그러는 것은 아니고 이동할 때는 아무래도 무거운 책을 가지고 다니기 힘드니까요. 카페에 비치된 소파에 앉아 읽는 책과 책상에 앉아서 집중하며 읽는 책도 다르고요. 두세 권을 동시에 읽으면 각 책의 내용이 모종의 화학작용(?)을 일으키는 순간이 찾아오는데요, 이 또한 독서의 즐거움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인스타그램의 책 읽는 계정은 동시에 읽고 있는 책 중 어느 것이라도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 업로드합니다. 발췌독을 위해 읽었던 책을 다시 읽는 경우를 제외하고 말입니다.
책을 고르고 소개할 때 중심에 두는 요소가 있습니다. 자극이 되었느냐, 한 단어 한 문장이라도 낯설게 다가왔느냐, 어떤 것에 대해 더 알아보고 싶게 만들었느냐 등입니다. 결국은 몸담고 있는 현장에서 이질감을 느끼게 해주는 책을 좋아하는 듯싶어요. 딱히 분야를 가리지도 않습니다. 요즘 사람들이 어떤 책에 끌리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부러 베스트셀러를 사서 읽기도 합니다. 책을 읽을 때만큼은 최대한 너그러워져요. 그래야 그 책에서 뭐라도 발견할 수 있으니까요. 매의 눈으로 비판할 요소를 잡아내기보다는 어떤 마음으로 이 단어를 고르고 저 문장을 완성했는지 헤아리는 게 좋아요. 고맙습니다.
@박새우 프랑소와 엄 님과의 케미를 기억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책읽아웃을 꾸준히 들어주신 분들께는 늘 벅찬 고마움을 품고 있답니다.
직장 다닐 때, 직장인에서 시인으로의 전환이 쉽지 않았습니다. 이러다가 한 줄도 못 쓰는 게 아닐까 걱정이 되어 스스로 루틴을 만들었어요. 토요일은 직장인에서 시인으로 건너가는 날로 정해서 많이 걷고 보고 듣고 상상하고 메모했습니다. 일요일에는 (웬만하면 약속을 잡지 않고) 종일 자리에 앉아 시를 썼어요. 당연히 처음에는 잘 안 됐지요. 인간은 모름지기 쉬고 싶어 하는 존재잖아요. 그때 몸을 일으키고 바깥에 나가서 자리를 잡고 랩톱을 켜고 묵묵히 썼던 것이, 저를 지금껏 쓰게 하는 동력이 된 듯싶습니다.
남들 하는 것 다 하면서 꾸준히 쓰는 일은 어려운 것 같아요. 저는 취미 몇 개를 기꺼이 포기하면서 읽고 쓰는 데 집중했거든요. 그래서인지 시간을 확보했다는 느낌보다는 가까스로 시간을 낸 느낌이었어요. 길을 내듯 내가 낸 시간에 내가 좋아하는 일을 했던 셈이죠. 고맙습니다.
우리가 시를 간절히 원할 때 시는 더 멀리 달아나는 것 같습니다. 또 우리 사회에 시가 필요한 순간이 왔을 때, 우리는 시와 또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습니다. 오은 시인께서는 미디어 활동 뿐만 아니라 시민들과 독자들과 소통과 교섭을 활발하게 하고 있는 이유는 시와 세상 사이의 격차 혹은 이격을 줄이는 노력이라 생각합니다. 시를 친근하게 해주고, 또 그 좋은 것을 놓치고 있는 우리가 이따금이나마 시를 맛보게 해주는 일에 열심이신 듯 합니다.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시를 놓치지 않기 위해, 또 더 멀리 떠나가지 않기 위해 시인들과 독자들은 어떤 노력을 기울여여 할까요?
<본인등판 1일 차 포인트 당첨자 발표>
오은 시인이 선정한 '좋은 질문'은 @muruybi 님의 질문입니다. 다음 주 수요일(1/31) 5000포인트를 지급해 드릴 예정입니다.
좋은 질문과 답변이 오갈 수 있도록 관심 갖고 살펴봐 주신 얼룩커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당첨자 선정은 오늘과 내일도 계속되니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hsmanim 시든 산문이든, 글을 쓸 때마다 제가 생각하는 게 있습니다. 바로 '한 끗'입니다. 세상을 놀랠 글을 쓰겠다는 포부에 젖어 부끄러운 글을 쓸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제가 발 딛고 서 있는 여기를 다르게 보려고 애씁니다. 다르게 본 것을 다르게 쓰려고 노력합니다. 글에 깃든 저의 시선이나 그것을 옮긴 문장에 '한 끗'이라도 다른 게 있는지 살펴봅니다. 그게 글의 개성을, 작가의 스타일을 만들어준다고 생각하거든요.
독자의 존재를 염두에 두지 않는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겁니다. 글이 발행되고 책이 출간되면, 그때는 이미 제 손을 떠난 게 되기 때문이에요.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는 일이 없도록, 소수자나 약자가 읽어도 상처받지 않을 글을 쓰려고 합니다. 초고를 다 쓰고 나서 표현 하나하나를 세심하게 살피는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 시든 산문이든 '한 끗' 다르게 쓰는 일이 참 어렵더라고요. 그런데 제가 이렇게 오랫동안 글을 쓰는 데에는, 어쩌면 그 어려움이 큰 동력이 되지 않았나 해요. 쉽다고 생각하거나 이제 좀 알 것 같다고 겉넘을 때, 사람은 실수하게 마련이잖아요.
'한 끗'을 생각하시면 좋겠습니다. 한 끗에서 개성이 나옵니다. 고맙습니다.
@웃는식 안녕하세요, 오랜만입니다. 반갑습니다. 프리랜서 생활이 길어지면서 '휴일=글쓰기' 공식이 그만 깨져버리고 말았습니다. 제 계획대로 일정이 조율되지 않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요즘은 틈만 나면 읽고 씁니다. 저는 이동할 때 대중교통을 이용하는데 버스나 지하철 안에 있는 시간은 '읽는 시간'입니다. 강연이나 사회를 보러 간 행사장 근처 카페에서 보내는 시간은 '쓰는 시간'입니다. 산책할 때 틈틈이 적어둔 메모가 쓰는 일을 가능하게 해줍니다. 최근 몇 년간 발표한 시와 산문 중 상당수는 길 위에서 쓰인 것입니다.
낯선 이에게 다가가는 일은 저 또한 어렵습니다. 그러나 낯설다는 것은 낯익어질 때까지 그만큼 알 수 있는 부분이 많다는 것이기도 하잖아요. 기본적으로 호기심이 많기도 하지만, 낯선 이를 마주할 때면 그래서 더더욱 상대를 궁금해하려고 노력합니다. 궁금한 게 없으면 대화는 겉돌 수밖에 없으니까요. 공통점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마음으로 대화를 시작합니다. 호기심은 곧 애정이잖아요, 애정을 보이는 상대에게 차갑게 대응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거예요. 궁금해한다는, 상대를 알고 싶어 한다는 진심을 보여주세요. 고맙습니다.
오은 시인은 시보다 먼저 얼굴을 알게 된 분입니다. 몇 년 전 어떤 자리에 가보니 시인이라고 소개된 분이 너무 재밌게, 또 다정하게 말씀을 잘 하시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사회활동가, 그리고 흠모하는 예술가들과 격의 없이 이야기 나누시는 시인의 모습을 보고 시집도 찾아보게 됐습니다. 공교롭게 제가 믿고 신뢰하는 단체나 모임에서 주최하는 행사에 오은 시인이 자추 초청되더군요. 그래서 더 좋은 마음과 믿음이 생겼습니다.
그런데요, 우리나라에서는 본업 외에 다른 활동을 많이 하는 아티스트를 다짜고짜 폄하하거나 격하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더구나 정치적인 색이 가미된 활동을 조금이라도 하게 되면 더 그런 편이지요. 이런 말씀을 듣지 않기 어려울 정도로 오은 시인께서는 미디어에 노출이 많이 되는 편인데요. 이럴 때 어떤 생각이 드실까요? 사람들의 마뜩찮은 시선과 불신을 어떻게 상대하고 또 이겨내는지 궁금합니다. 오은 시인님을 응원하고 지지합니다.
@kkomwall 반갑습니다. 아이디를 보니 누구신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책 읽는 계정을 보고 사람들은 제가 속독을 한다고 생각하는데, 생각만큼 읽는 속도가 빠르지는 않아요. 하지만 저는 대중교통으로 이동 중에는 늘 책을 읽는답니다. 운전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긴 틈을 책 읽는 시간으로 메운 셈이지요. 아침에 읽어나서 읽고 밤에 자기 전에 읽는 시간을 생각하니 하루 중 꽤 많은 시간을 읽기에 쓰고 있는 듯합니다.
빨리, 많이 읽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본인의 읽기 속도와 리듬 같아요. 저도 유독 천천히 읽게 되는 책들이 있어요. 책의 길이와 깊이와는 상관없이 '상념'이 중요한 책들이 있잖아요. 그런 책들은 머리맡에 두고 하루에 조금씩 읽어나갑니다. 비밀에 다가가는 신중한 발걸음을 떠올리면서요.
저 또한 시작은 창대하였으나 끝은 미약한 독서가 되는 경우가 왕왕 있어요. 저도 모르게 몰입한 나머지 생각보다 빨리 완독하게 되는 책도 있고요. 지금처럼 꼭꼭 씹어 드시듯 독서하시면 됩니다. 독서도 어쨌든 '소화'의 영역이니까요. 고맙습니다.
@eun00 아, 정말 어려운 질문이에요. 제 편견을 깨준 출연자, 저와 대화 궁합이 유독 잘 맞았던 출연자, 대화가 끝나고 나서 유난히 여운이 길었던 출연자 등 한 분 한 분이 다 소중합니다. '주마등'이라는 진부한 표현을 안 쓰려고 하는데, 지금도 머릿속으로 출연자들의 얼굴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헤헤.
한 분만 고르자면 김혜순 시인을 꼽겠습니다. 선생님과 밀도 있는 대화를 처음 나눈 때이기도 하고, 말씀을 들을 때마다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던 날이었거든요. 한 가지 일을 오랫동안 한 사람만 가질 수 있는 신념과 태도가 오랫동안 기억에 남기도 했어요. 문학의 등불을 눈앞에서 생생하게 마주한 기분이었습니다. 천천히 오래 써야겠다고 다짐한 날이기도 했어요.
말수가 적은 게스트가 출연하면 난감하지요. 실제로 단답형으로 대답하거나 (현장에서 던진 즉흥 질문에) 적잖이 당황하시는 분들도 계시거든요. 그런데 그것 또한 좋은 대화로 가는 여정이라는 생각을 갖게 됐어요. 일상적인 질문에서 출발하자, 답하기 쉬운 질문부터 던져보자, 아직은 얼어붙어 있는 상대의 마음을 천천히 열어젖혀보자 하는 마음으로 대화에 임합니다. 그러다 보면 눈 녹듯 대화의 실마리가 풀리기 시작하더라고요.
어쩌면 말수가 적은 것은 성정이기도 하지만, 제가 대화의 물꼬를 잘 트지 못해서 일지도 모르잖아요.
책읽아웃을 오래 진행하니, '쉬운 대화'는 없다, 불가능하다는 확신이 들더라고요. 대화가 잘 안 풀릴 때면 흘러가는 것들을 생각합니다. 물, 구름, 시간 같은 것이요. 이야기에 자주 쓰는 동사가 '흘러가다'잖아요. 말의 흐름을, 상대 눈빛의 흐름을, 분위기의 흐름을 생각하지요. 그러다 보면 머뭇거리듯 다음 말이 나오더라고요. 고맙습니다.
@김진후 작가들에게 가장 필요한 지원은 아무래도 경제적 지원이 아닐까 해요. 작가라고 해서 무조건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을 받아야 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도서관에서 운영하는 상주 작가 제도나 창작 지원금 사업 등 작가들에게 도움이 되는 사업을 떠올려봅니다. 글을 쓰면서도 (당분간이지만) 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는 데 많은 작가들이 안도할 수 있었지요.
작은 서점 지원 사업의 예산이 사라진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도서관 지원 사업의 예산이 삭감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우울해졌습니다. 작은 서점 혹은 도서관에서의 낭독회나 북 토크 행사는 독자와 작가가 만나는 장입니다. 작가 입장에서는 독자를 실제로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고, 독자는 작가에게 평소 궁금해했던 것에 대해 질문을 던질 수 있습니다. 행사가 벌어지는 서점과 도서관은 '책'으로 매개될 수 있는 가능성의 현장이 되고요.
작가들을 위한 창작 지원, 작은 서점과 도서관이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진행할 수 있는 경제적 지원이 계속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생활이 사라진 자리에서 좋은 문학이 나올 수 있다는 말을, 저는 믿지 않습니다. 고맙습니다.
@QOQO98 작가 활동을 하며 가장 곤혹스러운 일은, 제가 글쓰기를 하고 있지 못할 때입니다. 저는 여전히 '쓰는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이 가장 강한데, 여기저기서 말하는 일이 많아지다 보니 실제로 쓰는 시간을 내는 게 쉽지 않아졌어요. 쓰기 이전과 이후에 들이는 시간도 필요하기 때문에, 갈수록 쓰기에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써야겠다고 다짐하고 있습니다.
왜 이런 시를 쓰느냐, 더 친절하게 쓸 수 없느냐, 시인인데 왜 말을 잘하느냐 등 현장에서 튀어나오곤 하는 무례한 질문들 앞에서 무기력해질 때도 있습니다. 그때마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의 속은 모른다"라는 속담을 떠올려요. 이해했다고 생각할 때조차 (이해했다고) 오해하고 있는 게 사람이잖아요. 그것이 시나 소설 등의 형태로 발화될 때 당연히 완벽하게 이해될 수는 없을 겁니다. 어쩌면 잘 오해하기 위해 우리는 쓰고 읽고 듣고 말하는 게 아닐까요? 고맙습니다.
책읽아웃 덕분에 팬 됐습니다. 지금은 진행하지 않으시지만.. 프랑수와엄님과의 케미가 특히 재밌었던 것으로 기억하네요^^
직장인으로 살면서 글쓰는 삶을 꿈꾸고 있습니다. 하지만 작가라는 타이틀은 아직 멀고 먼 꿈 같아요. 작가님은 회사에 다닐 때도 꾸준히 책/글을 쓰셨나요? 시간은 어떻게 확보하셨는지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