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의 무의미함과 성과의 혼동에 대하여

이건해
이건해 · 작가, 일본어번역가. 돈과 일을 구함
2023/02/28
‘수필을 쓸 거라면 기왕이면 재미난 것, 행복한 것에 대해 써서 기쁨을 널리 퍼뜨리자’라고 생각하곤 하는데, 역시 생각은 쉽고 실천은 어렵다. 이번에도 그다지 신이 안 나는 이야기를 할 판이다.

나는 어릴 때부터 보드게임이라는 문화에 영혼을 팔아온 사람으로, 에너지와 시간이 넘치던 시절에는 보드게임 관련으로 별짓을 다 했다. 그냥 사서 갖고 놀기만 한 게 아니라 리뷰도 적지 않게 썼고, ‘까짓거 해보지 뭐’라는 생각으로 팟캐스트 방송도 했으며, 매거진에 칼럼도 썼고, 크라우드 펀딩으로 내 게임을 만들어 팔기도 했다. 그만큼 보드게임은 내게 높은 가치를 갖는 유희였고,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기에 오래도록 변함없이 행복한 취미가 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요즘 들어서 그 가치가 흔들리는 게 절실히 느껴진다. 아마 내가 절찬리에 여유를 잃어가는 중이기 때문일 수도 있고, 새 게임이 공급되지 않아서 비슷비슷한 행위에 질려가는 중이기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단 하나 확실한 것은, ‘모든 것이 예전 같지 않다’는 사실이다.

특히 심각하게 전과 다른 부분은 바로 보람이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 사람이 뭘 해도 보람, 효능감을 느껴야 원동력이 되는 법이니까 이건 아주 무서운 증상이다. 그런데 정말로 예전에는 꺼낼 때마다 굉장히 재미있고 웃기고 신날 것 같던 게임들의 80%가 이제 ‘굳이 이걸 할 필요는 없지’ 싶은 영역으로 넘어가서 애초에 시도도 하지 않게 되었고, 나머지 15%도 또 해보면 재미있을 것 같아서 해봤다가 ‘어째 예전이랑은 다른데’ 하고 고개를 젓기 일쑤다. 얼마 전에는 내가 수년 전에 열과 성을 다해서 번역한 게임을 꺼내서 해봤는데, 친구들도 그리 흥이 나지 않는 듯했고 나 자신도 보스와의 일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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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미스터리를 주로 쓰고 IT기기와 취미에 대한 수필을 정기적으로 올립니다. 하드보일드 미스터리 소설 “심야마장-레드 다이아몬드 살인사건”으로 데뷔. SF호러 단편소설 ‘자애의 빛’으로 제2회 신체강탈자문학 공모전 우수상. 제10회 브런치북 출판공모전 특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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