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한국 영화, 1990년대, 시작 그리고 노란문

김형욱
김형욱 · 책으로 책하다
2024/02/09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노란문> 포스터.

2020년 이후 한국 영화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끝을 알 수 없는 불황기로 빠져들었지만, 직전에는 역사상 최고의 한때를 보낸다. 2019년은 '한국 영화 100주년'이 되는 해였고 극장을 찾은 관객이 2억 2천만 명을 넘으며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또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제72회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의 영예를 안았고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영화상을 휩쓰는 믿기 힘든 쾌거를 이룩했다.

봉 감독은 <기생충>의 역사적인 성공 후 수없이 많은 인터뷰에서 대학 시절 군 제대 후 활동했다는 영화 동아리 '노란문 영화 연구소'(이하, '노란문')을 자주 언급했다. 3명이 창립 멤버이고 한때 30명도 넘었지만 3~4년간 짧게 유지되었다. 원서를 구해 번역하며 공부했다고. 봉 감독의 데뷔작은 1993년 <백색인>인데 노란문 활동 당시 만들었다. 그런데 그의 '진짜' 데뷔작이 있다고 한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영화 <노란문: 세기말 시네필 다이어리>(이하 '노란문')가 봉준호의 진짜 데뷔작이 나왔을 시절을 세세하게 전한다. 말로만 지나가듯 들었던 '노란문'의 실체에도 자세히 접근한다. 봉준호와 친구들 또는 친구들과 봉준호는 그때 왜 함께 모여 무엇을 어떻게 하며 시절을 보냈을까. 봉 감독 영화 세계의 시작점일 텐데 이제야 자세히 알려지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노란문의 태초에 세 명이 있었다

'노란문'의 시작에는 세 명이 있었다. 당시 동국대 대학원 재학(연세대 졸업) 중이었던 최종태, 그와 안면을 튼 연세대 재학생 이동훈, 그리고 이동훈의 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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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 편집자와 [오마이뉴스] 영화 기자를 10년 넘게 병행하고 있다. 블로그와 스토리채널 ‘책으로 책하다’, 네이버 프리미엄콘텐츠 ‘영필당’을 운영 중이며 키노라이츠 인증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아트하우스 모모’ 10기 큐레이터로 활동하며 정기 프로그램 ‘영화후에’ 사회자를 맡았다. 교육학자 아내와 함께 『지지해 주는 부모 스스로 공부하는 아이』를 출간했고 북이오 채널에서 전자책 『영화가 필요한 시간』을 출간했다. 올레TV ‘파본자들’ 영화 [크림] 편에 출연했고 삼양그룹 뉴스레터 ‘우리함께 Weekly’에 영화 글을 기고했다. 잘 보는 방법과 잘 쓰는 방법을 늘 고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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