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우리 할머니> :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를 기억합니다

신승아
신승아 · 삐딱하고 멜랑콜리한 지구별 시민
2023/11/09

전국 도서관에 비상이 걸렸다. 사서들은 눈 뜨면 추가되는 학부모들의 민원을 처리하느라 눈코 뜰 새 없다. 현재 도서관들이 대한출판문화협회에 보낸 공문을 보면, 보수 성향 민간단체들이 인권 문제를 다룬 책이 청소년 유해 도서라고 주장하며 ‘열람 제한 및 전면 폐기’를 요청하고 있다고 전했다. 독재 정권 시절에나 있을 법한 ‘금서 지정 운동’이 한도를 넘자, 민원에 취약한 도서관들은 단체 행동에 돌입했다. 출판업계에 자문을 구하고, 기자들을 만나 사건을 공론화하는데 앞장섰다. 최근 일부 지역 도서관들은 간행물위원회에 민원이 제기된 117권의 유해성 여부를 심사해달라고 의뢰하기도 했다.

대체 자칭 ‘애국보수’들의 심기를 건드린 책들이 무엇인지 궁금해서 그 목록을 쭉 훑어봤다가 헛웃음이 터졌다. 청소년의 성 이야기를 그린 <10대를 위한 성교육>, 외모, 성격, 인종, 장애 유무 등 나와 다른 존재들을 통해 차별 없는 세상을 꿈꾸게 하는 그림책 <달라도 친구>, 일본군 ‘위안부’ 피해 생존자 심달연 할머니의 증언을 토대로 한중일 작가들이 협업하여 엮어낸 <꽃할머니>가 ‘금서 목록’에 올라 있었다. 나라가 망할 때마다 수상한 부모들이 출몰하여 깽판을 쳤다더니, 그 말이 딱 맞았다. 차별에 찬성하는 것도 모자라 겨우 100년도 안 된 역사적 미결 사건을 잊어버리라고 강요하는 꼴이라니, 한심하기 그지없다.

그들의 의도된 무지와 선량한 악의에 기가 찼지만 이내 평정심을 되찾았다. 씁쓸하지만 인권은 정치적 투쟁의 산물이다. 최장기간 평화 시위로 매주 ‘세계 신기록’을 갱신하는 ‘수요 시위’가 이를 방증한다. 1992년 1월 8일 수요일,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하기 위해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시위가 개최되었다. 역사 지우기에 혈안이 된 일본 정부 보다 끔찍한 것은 지나가는 시민들의 반응이었다. 삽시간에 거리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쌍욕과 고성이 오가며 감정이 격해졌다. “아니 이게 뭐 하자는 거예요? 쪽팔린 것도 몰라요? ...
얼룩패스
지금 가입하고
얼룩소의 모든 글을 만나보세요.
이미 회원이신가요? 로그인
퀴어 페미니스트, 비건 지향인, 천주교 신자, 그리고 그 무엇
141
팔로워 200
팔로잉 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