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진 · 사회심리학 이론을 덕질하고 있습니다.
2023/04/02
우선 저는 사회심리학 전공이고, 마침 이와 매우 밀접한 주제로 해외학술지 논문 투고를 앞두고 있는 시점이기에, 분야는 다를지언정 학계에서 현재 어느 정도 정리된 내용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관련 키워드는 historical injustice, political apology, official apology, collective apology 등이 있으니 관심 있으신 분들은 구글 스칼라에서 검색해 보시기 바랍니다.

1. 사과는 불의를 바로잡기 위한 시작도 아니고 끝도 아닌, 그 중간 단계입니다.

호주의 사회심리학자 매튜 혼시(M.J.Hornsey) 등의 연구자들에 따르면, 공적 사과는 어떤 이들의 말처럼 '불의를 바로잡기 위한 첫 걸음이라는 의의' 가 있는 것이 아니며, 또 어떤 이들이 우려하는 것처럼 '이로써 모든 갈등이 해소되었다' 고 잘못 평가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다시 말해, 사과에는 반드시 사회적인 노력이 선행되었어야 하고, 사과 이후에도 적절한 후속 조치가 이어져야 합니다. 연구자들은 사과에 선행되어야 할 사회적 노력으로서 집합적 죄책감과 역사관의 합의를 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과 후의 조치로는 적절한 금전적 배상 및 지속적인 관여가 거론됩니다. 이런 전후 단계의 노력들이 있는 한, 역사적 불의에 대해서 사과한다는 것은 이론 상 가능합니다.

이번 5.18 건에 대해서 생각건대, 전우원 씨의 행보는 상당히 돌출적인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5.18 문제는 늘 정치적으로 첨예한 갈등을 빚어 왔으며, 특히나 역사관이 얼마나 합의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더더욱 비관적으로 느껴집니다. 물론 구체적인 사회조사 데이터가 있어야 우리의 현주소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겠으나, 현재 상태에서 전 씨에 대해 "그가 전두환 일가를 얼마나 대표할 수 있겠는가" 하는 비판이 나오는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가장 이상적인 사과는, 전두환 일가 전체가 5.18 에 대한 죄책감을 공유한 상태에서 불의를 시정하기 위한 방편으로서 전 씨를 광주에 대표격으로 내려보내는 상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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