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에 내놓았던 아이디어가 실현되었다.

9월이었던가, 아직 반팔 입고 다닐 쯤 정부 청사에 초청받은 적 있습니다. 그때 정무관 님 왈 “현우 씨, 지방 청년 민심이 알고 싶습니다.”, 국무총리실도 작금의 청년담론이 서울, 수도권, 명문대 위주로 쏠려 있다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노동현장 문제를 들으려 해도 정작 중소기업 노동자 청년 이야기를 듣기 어렵다는 고충도 들었구요. 백 번 공감했습니다. 99.9%의 중소기업은 노조가 없기에 간담회 같은 게 열리면 귀하디귀한 연차를 써야 합니다. 더군다나 아직도 연차계 항목에 ‘연차 사유’ 따위가 당당히 존재하는 지라 당당하게 갈 수도 없죠. 반면 노조가 있으면 기자나 정치인 올 때 응대가 훨씬 수월합니다. 심지어 시장하고 면담하는 시간을 근무시간으로 쳐주는 거 보면서 깜짝 놀랐어요. 누구는 평일 거짓 연차를 써야 하고, 누구는 떳떳하게 급여까지 받아가면서 사람 만나고…… 정치 참여의 장벽 높이가 너무나 다른 셈이죠. 제가 “너 말고 청년 제조 중소기업 노동자 인터뷰 할 방법 없니?”라는 질문만 수십 번 받았는데 고사한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인터뷰 나와 달라고 하면 다 거절하거든요. 
 
한참 공무원 분들과 이야기 나누다 문득 아이디어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얼마 전 모교인 창원 폴리텍에 간 적이 있는데, 그때 학장님께 들었던 이야기가 “우리 학교엔 스무살 신입과 다른 학교 혹은 일하다가 다시 들어 온 학생들(턴족) 비율이 반반이라 고민이다. 신입생 비율을 늘릴 만 한 홍보방안이 없겠는가.” 였습니다. 대기업 다니다 굳이 사직서 쓰고 폴리텍으로 가는 경우는 거의 없을 터. 지방 청년의 생생한 중소기업 경험담을 뽑아낼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더군다나 폴리텍은 고용 노동부 산하 기관이라 매칭도 아주아주 간단하죠. BH에서 내리 꽂으면 전화 몇 통만 걸면 되니까요. 물론 이 방식도 결국 반쪽짜리긴 합니다. 폴리텍 재학생은 남성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아 정작 여성 노동 문제를 채집하기 쉽지 않으니까요. 암튼 안 돌아가는 머리 써서 짜낸 반쪽짜리 아이디어는 서랍에서 잠만 자다가, 어느 국회의원 덕분에 현실화 되었습니다. 마침내 폴리텍 학생들 상대로 간담회를 열게 된 겁니다. 
 
저를 제외한 남성 7, 여성 1의 압도적인 성비 속에서 오간 대화는 정말 인상 깊었습니다. 나름 이 바닥 빠꼬미라 생각했던 저조차 어느새 서울식 담론에 치우쳐 있더군요. 아주 인상 깊었던 이야기와 소재 몇 개만 따서 정리해보자면.
 
1) 창원 소재 전문대를 다녔다가 자퇴 후 폴리텍으로 들어 온 남학생 왈. 당시 본인은 메카트로닉스(기계+전기)과였는데, 용접 자격증을 따기 위해 실습실에서 연습을 했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불이 꺼져서 정전인가 했더니, 지도 교수가 집에 가야 한다고 차단기를 내렸다더군요. 그게 오후 3시였다고 합니다. 그때 심하게 현타가 와서 이딴 대학 졸업해봐야 뭐하나 생각이 들었고, 2학기 때 바로 군대 갔다가 자퇴했답니다. 부실 대학 문제의 단면을 보여주죠. 
 
2) 이 학생은 제대 후 충남 쪽 공장으로 잠깐 일하러 갔었는데, 자기 선배인 주임이 엄청 크게 문책을 당해서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웬 걸. 현장에서 갑자기 발작하면서 쓰러진 분이 있었는데 묻지도 않고 대형 병원으로 데려간 탓에 엄청 욕을 먹었답니다. 대형 병원으로 가면 빼박 산재처리 해야 하는데 회사 영업정지 먹으면 책임질 거냐면서요. 인명피해가 났는데 사람 구할 생각은 안 하고 전화 돌리기 바빴다던 평택항 사고가 생각나더군요.
 
3) 마산 소재 전문대 컴퓨터 응용 설계학과를 졸업했던 남학생은 현장에 처음 간 순간 기겁했다고 합니다. 분명 전공 맞춰서 CNC 공작기계를 돌리는 회사로 갔는데, 공부한 것과 현장이 너무 달라서 배운 게 하등 쓸모가 없더라는 거죠. 전문대는 취업특화 대학이라 그렇게 홍보를 하더니, 정작 실습할 기계며 실습도구 준비가 매우 미흡하더랍니다. 하물며 대학 나왔다고 임금을 더 쳐주는 것도 아니고 고졸이나 경력 5년차나 똑같은 최저시급 언저리에 상여 400프로. 절망을 느끼고 이런 상황에서 탈출하려 폴리텍으로 왔다고 하네요.
 
4) 여학생은 마산 한일전산여고(현재 한일여자고등학교) 나와 취업에 뛰어들었습니다. 하지만 고졸 학력에 여성이 갈 수 있는 직장은 서비스직이 고작. 와중에 친구들 대다수가 지방을 떠나고 남아있는 친구들은 전부 결혼했다고 합니다. 와중에 아주아주 조심스럽게 유리 천장을 언급했는데요. 제가 유리천장 아니라고 즉각 받아쳤죠. 경남 쪽 제조업에선 유리 천장이 아니라 강철 천장이라고. 현재 구조에선 여성 임원은 결코 나올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5) 창원 3대 악덕기업으로 꼽히는 곳에서 일했던 학생 분도 있었습니다. LG 1차 밴더 회사였고 냉장고에 들어가는 응축기를 만들었다고 하네요. 2030은 대부분 베트남인이었고, 현장엔 40대 후반부터 50대. 동갑내기 한국인이 없어서 외로웠답니다. 주간 야간을 불규칙하게 섞어서 일했는데, 완전 야간근무를 했던 시기엔 월급 400만원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땐 뿌듯했는데 계속 하루 12시간씩 단순 노동만 하다 보니 어느새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 뭐였는지 돌아보게 되더랍니다. 결국 진로를 찾아 폴리텍에 뒤늦게 입학했다고.
 
5) 전문계고 졸업 이후 나름 괜찮은 중소기업에 갔던 학생 분. 금형 제조 업체였는데 연봉도 평균 4500으로 가량으로 적지 않았지만 사람에 질려서 나오게 되더랍니다. 오죽 시달려서 성격까지 내성적으로 변했다고 하더군요. 중소기업 특유의 ‘체계 없음’과 제조업 현장 노동자들 특유의 ‘격의 없음’이 청년세대에겐 큰 위화감으로 작용하는 듯합니다. 저 역시 스무 살 땐 현장 사람들과 소통이 참 어렵다고만 생각했는데, 누군가에겐 회사를 관두게 할 만큼 골치 아픈 난제였더군요.
 
6) 수도권과 다른 경향성도 보입니다. 남성들이 대체로 공장 알바 경험이 있었다는 점. 그걸 부모님들이 딱히 말리지 않았다는 점. 또한 전원이 ‘결혼 생각이 있다’라고 답변한 점. 여유가 허용하는 한 결혼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는 점까지. 수도권과 너무도 다른 정서에 의원님도 신기해하시는 모양이더군요. 저는 이를 ‘산업 가부장제 모델’의 영향이라고 봤는데요. 연봉 8천 이상의 정규직 남편과 가사, 돌봄, 자녀 입시까지 책임지는 아내 둘 간의 분업 체계를 아직도 희망하는 듯했습니다. 학생들은 현대에 들어서 이 모델을 구현하기 어렵다는 점은 알고 있지만, 지방 부동산 값을 생각하면 불가능도 아니라며 꽤 구체적인 계획도 제시했습니다. 
 
한 시간 반 동안 이야기를 들은 다음. 저녁 식사 시간에 쫄래쫄래 따라갔습니다. 학생들은 해당 국회의원이 뭐하는 분인지 잘 모르더군요. 걍 똑똑하구 착한 형이던데 정치 성향에 대해서도 모두 ‘중립’이라 대답하면서 스윙보터 포지션을 자처했구요. 정치로 무엇을 바꾸기 이전에 자기 삶을 스스로 바꾸는 게 중요하다고 보는 분들이었습니다. 좌뇌에서 “오, 진짜 멋지게 사네.” 라고 생각하는 동시에, 우뇌에서 “근데 정치 효용감이 얼마나 없으면.” 라는 걱정도 들더군요. 또한 현재 정치권에서 나오는 청년 이야기가 너무 젠더, 공정에 치우쳐 있다는 진단을 하던데요. 당시 나온 말을 그대로 옮기면 “근로기준법도 잘 안 지켜지는 마당에, 남녀를 굳이 가르고, 시험 점수로 줄 세우기나 하고, 이렇게 갈라치기만 해서 뭐가 남을지 모르겠어요.” 였습니다.
 
이 학생들에게 이상적인 청춘이란, 굳이 폴리텍으로 턴하지 않아도 만족할 만한 삶을 누리는 형태였을 겁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평범한 청년들에게 잔인하고, 지방 청년들에게 무자비합니다. 이렇게 꼬이고 꼬인 문제를 풀어나가기 위해선 더 많은 목소리를 듣고, 사례를 채집하는 것부터 시작해야겠지요. 불평등 해소를 위한 만리행군에 임하기 전. 이번 모임에서 나온 말을 정리하면서 짧게 남긴 코멘트를 인용하며 마무리 하겠습니다.
 
[의원님과 통화해보니 지방 일정이 꽤 마음에 드셨던 것 같네요. 저는 의원님이 계속 이런 일. 청년의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즐기셨으면 좋겠어요.’, 함부로 말하긴 좀 조심스럽습니다만. 사명감으로만 접근하다 보니 어느샌가 극단적으로 변해있는 분들이 있더라구요. 여러 의견들과 조정하는 과정을 생략한 채로 자기 입장만 밀어붙이게 되고, 대변하고자 하는 사람들만의 세계에 갇혀 버리고 말더군요. 그만큼 현실을 바꾸는 일이 처절하고 힘겨운 과정을 동반한다는 뜻이겠죠. 쉽게 풀 수 없는 일이니까, 차라리 함께 오래오래 조금씩, 천천히 가볍게 나아갔으면 해요. 저도 제 자리에서 계속 고민하고 배우는 걸 즐기려고 합니다.]
 
p.s 천관율 대장…… 에디터 님이 1주일 전 또 한 번 화제를 몰고 오셨더군요. 제가 그 ‘공부방 계급론’이 처음 언급된 방송에 나왔었는데요. 그냥 가볍게 소감만 적어보려다가 학계 전문가 분들이 다 등판하시는 바람에 바람에 슬그머니 짜졌습니다. ㅜ_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