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장만 넘겨보면 깨끗한 여백이 얼마든 남아있다

이창
이창 · 쓰고 싶은 걸 씁니다.
2022/12/14

  보통 글을 쓸 때는 노트북을 이용한다. 예기치 않으면 핸드폰으로도 쓴다만 기본적으로 자판이 있어야 한다. 가끔, 펜 촉이 종이를 긁어내리는 사각사각한 촉감을 느끼고 싶을 때에만 펜을 잡는다. 그날은 어떤 생각에 대해 잊어버릴까 급히 노트를 꺼낸, 간만에 종이 냄새가 어렴풋이 코끝을 간지럽히는 그런 날이었다. 서랍에 손을 아무렇게나 뒤적거려 언제 사놓은지도, 아니 이런 걸 산 적 있긴 한 건가 싶은 연필을 꼭 쥐고 곧바로 무언가를 끄적였다. 급한 마음 때문일까. 글씨가 영 엉망이다. 나는 분명 명필인데. 이럴 리가 없는데. 잊지 않기 위해 구태여 남겨 놓는 수고까지 했는데 흘려 쓰여 정돈되기는커녕 붕 떠 날아다니는 느낌. 지워버리자. 다시 지우개를 찾아 종이를 박박 문지르다 이번엔 힘 조절에 실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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