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불행하게 하는 것들에 동정은 필요 없다

이창
이창 · 쓰고 싶은 걸 씁니다.
2023/02/10

  냇가에서 물장구를 치고 있었다. 아주 어릴 때라 겨우 무릎까지 오는 수심에도 행여 빠지지 않을까 조심했던 기억이 난다. 얕게 흐르는 물살과 투명한 수면 넘어 보이는 반질반질한 돌멩이들을 구경하던 차에 다리, 정확하게는 종아리 쪽에 이유 모를 이질감을 느꼈다. 거머리 하나가 내 다리에 달라붙어 꼬리를 흔들며 피를 빨고 있는 게 아닌가. 씩씩하게 그놈을 떼어 저 멀리 던진 순간, 질기게도 그놈은 더 높이 점프해 나를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듯 거센 몸부림으로 연약한 살을 파고들었다.
  난 완전히 겁에 질렸다. 수백 마리 거머리들이 일순간 나에게 달라붙어 만족스럽게 몸 안에 남은 피를 다 빨아먹고 미라처럼 홀쭉해지는 망상에 사로잡혔다. 정말이지 괴기스러운 광경이었다. 아무런 대처도 못하고 그 자리에 얼어붙어서 울기만 했던 것 같다. 그런 나를 두고 아버지는 다가와 무심하게 거머리를 떼주었다. 살짝 피가 고인 아주 조그마한 상처가 보였다. 겨우 그거였다니. 나는 놀랍도록 아무렇지 않은 무언가에 대해 그토록 증폭된 공포를 느꼈다는 것이 실소가 터지면서도 동시에 원래의 몸집보다 훨씬 확대되어 다가오는 별것 아닌 일들에 대한 트라우마가 남았다.


헤르만 헤세, 1877~1962

  싱클레어는 두 세계 사이에서 방황한다. 세계의 양쪽 끝에서부터 나온 밤과 낮. 한 세계는 사랑과 철칙, 교육과 모범이 있는 부모님의 집이다. 다른 한 세계는 하녀들과 행상들, 귀신 이야기와 추문이 넘쳐나는 곳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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