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1/14
2023/01/25
지난 번 글 '노시니어존은 있다'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지난 번 글에서 저는 정진욱님이 올려주신 글의 첫 문장 "노키즈존은 존재하는데, 노시니어존은 없다"을 보고 노시니어존이 있다는 지적을 하면서 몇 가지 의문을 남겨봤습니다.
노시니어존으로 운영되는 업장들, 옛날엔 나이트클럽, 요즘에는 그냥 클럽이라고 하는 그 업장들이 대중은 물론 시니어들의 별 반발없이 운영되고 있는 실태를 거론하고, 형식논리로 볼 땐 노키즈존과 마찬가지로 클럽도 나이로 이용을 제한하는 업장들인데 왜 여기엔 사람들이 반감을 (별로) 가지지 않을까, 하는 사실 별로 쓸데없는 생각을 남겨보았습니다.
글에 몇몇 분들이 의견을 남겨주셨는데, 제 입장에선 특히 원글의 저자인 정진욱님(진욱님, 태그 기능은 열심히 개발 중입니다!)과 허탁님의 댓글을 읽고 생각을 좀 더 이어가볼 수 있었습니다. 두 분의 지적을 간단히 요약해보겠습니다.
진욱님은 "차별을 당하는 주체가 차별이라고 느끼지 않기 때문"이라는 점을 짚었습니다. 논리적으로 보면 동어반복이긴 하지만, 저를 비롯, 수많은 이 땅의 (양식있는?) 시니어들 모두 클럽에서 입구컷 당한다고 차별이라고 "느...
노시니어존으로 운영되는 업장들, 옛날엔 나이트클럽, 요즘에는 그냥 클럽이라고 하는 그 업장들이 대중은 물론 시니어들의 별 반발없이 운영되고 있는 실태를 거론하고, 형식논리로 볼 땐 노키즈존과 마찬가지로 클럽도 나이로 이용을 제한하는 업장들인데 왜 여기엔 사람들이 반감을 (별로) 가지지 않을까, 하는 사실 별로 쓸데없는 생각을 남겨보았습니다.
글에 몇몇 분들이 의견을 남겨주셨는데, 제 입장에선 특히 원글의 저자인 정진욱님(진욱님, 태그 기능은 열심히 개발 중입니다!)과 허탁님의 댓글을 읽고 생각을 좀 더 이어가볼 수 있었습니다. 두 분의 지적을 간단히 요약해보겠습니다.
진욱님은 "차별을 당하는 주체가 차별이라고 느끼지 않기 때문"이라는 점을 짚었습니다. 논리적으로 보면 동어반복이긴 하지만, 저를 비롯, 수많은 이 땅의 (양식있는?) 시니어들 모두 클럽에서 입구컷 당한다고 차별이라고 "느...
1)에 대해서는 이런 당사자성?!에 따른 구분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 노키즈존이라고 하면, 아이들이 혼자 들어가려다가 거부당한다기 보다는 부모님과 함께 들어가려고 할 때 거부당하는 경험이 더 많을 것 같은데요. (편견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런 대우를 받는 아이 본인은 이것이 차별이 아니라고 판단할 당사자성이 모호하며, 업주도 당사자에게 설명하고 양해를 바랄 의무감이 상대적으로 낮지 않을까 추측해 봅니다. 여러모로 중간자인 부모님 입장만 난처한 상황이 아닐런지..
2)카페 스스로가 정체성을 확실히 한다면 납득할 수 있지 않을까요. 특정 분위기나 목적을 상품으로 하는 곳이라면, 굳이 미리 차별하지 않더라도 문제가 될 시 공간의 일반적인 룰로써 제재를 요청해도 큰 문제가 없을 것 같습니다. 다만, 이를 미리 알 수 없는 형태의 공간이라면, 예를 들어 일반적인 '카페'라면 이 카페의 상품성이 충분히 세그먼트화 되어 있다는 취지를 이용객이 사전에 알 수 있을 정도의 어필이 있어야 된다고 봐요..ㅎㅎ 물론 물론 어렵겠지만, 이 목적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 채, 사람을 가려 받는다는 건, 당사자들에게는 기분나쁜 일일 수 있으니 노력이 필요할 것 같아요..
고민거리를 더 확장하도록 이야기를 재차 던져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울러 태그 기능도 개발중이라니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ㅎㅎ
우선 ‘당사자가 차별이라고 느끼지 않는 차별은 차별이 아닌가?’ 차별의 정의로 따지면 차별이 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당사자성이 떨어지는 만큼 그 차별을 시정하기 위한 동력은 한참 떨어지겠죠. 조금 범위가 넓어지지만, 성차별을 예로 들어보려 합니다. 고령층 여성 일각에서는 성차별에 대해 다소 무신경한 경향을 보이곤 합니다. 가령 본인이 아닌 남편 가문의 제사를 이어갈 아들을 선호하는 모습이라던지 하는 스테레오타입을 말씀드리는 겁니다. 이걸 추구하는 과정에서 며느리를 향한 성차별적인 언사가 난무하기도 하죠. 이게 스테레오타입인 건 그만큼 한국 사회에 만연해 있다는 것이기도 할 겁니다.
이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불평등한 걸 알고 있지만 ‘그게 사회의 룰이니 따라야 한다’고 하는 여성분들도 있을 겁니다. 분명 이들의 존재와 주장은 성차별을 해소하는 동력을 떨어뜨릴 겁니다. 그러나 그들이 성차별로 느끼지 않는다고 해서 그게 성차별이 아닐 순 없겠죠.
다시 제가 지난 글의 댓글로 달았던 ‘차별로 인식하지 않는 시니어’의 이야기로 돌아가보겠습니다. 제가 어렴풋이 ‘사회적 위신’이라고 했던 말은 사실 그들에게는 일종의 ‘프레임’일지도 모르겠습니다.(성차별의 영역이 아니라 맨박스라는 말을 붙이기엔 부적합하겠죠) ‘나이값’과 ’어른다움’이라는 말, 주책이라는 비아냥.. 이런 것 또한 차별을 시정하기 위한 적극적인 행동을 막고 있는 것이라고 봅니다.
종합해보면 차별을 차별이라 느끼지 않는 이들 또한 결국은 (스스로 인지하지 못할지라도) 차별의 피해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나저나 ‘차별’이라는 말만 몇번을 했는지.. 어질하네요. ㅎㅎ
고민거리를 더 확장하도록 이야기를 재차 던져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울러 태그 기능도 개발중이라니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ㅎㅎ
우선 ‘당사자가 차별이라고 느끼지 않는 차별은 차별이 아닌가?’ 차별의 정의로 따지면 차별이 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당사자성이 떨어지는 만큼 그 차별을 시정하기 위한 동력은 한참 떨어지겠죠. 조금 범위가 넓어지지만, 성차별을 예로 들어보려 합니다. 고령층 여성 일각에서는 성차별에 대해 다소 무신경한 경향을 보이곤 합니다. 가령 본인이 아닌 남편 가문의 제사를 이어갈 아들을 선호하는 모습이라던지 하는 스테레오타입을 말씀드리는 겁니다. 이걸 추구하는 과정에서 며느리를 향한 성차별적인 언사가 난무하기도 하죠. 이게 스테레오타입인 건 그만큼 한국 사회에 만연해 있다는 것이기도 할 겁니다.
이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불평등한 걸 알고 있지만 ‘그게 사회의 룰이니 따라야 한다’고 하는 여성분들도 있을 겁니다. 분명 이들의 존재와 주장은 성차별을 해소하는 동력을 떨어뜨릴 겁니다. 그러나 그들이 성차별로 느끼지 않는다고 해서 그게 성차별이 아닐 순 없겠죠.
다시 제가 지난 글의 댓글로 달았던 ‘차별로 인식하지 않는 시니어’의 이야기로 돌아가보겠습니다. 제가 어렴풋이 ‘사회적 위신’이라고 했던 말은 사실 그들에게는 일종의 ‘프레임’일지도 모르겠습니다.(성차별의 영역이 아니라 맨박스라는 말을 붙이기엔 부적합하겠죠) ‘나이값’과 ’어른다움’이라는 말, 주책이라는 비아냥.. 이런 것 또한 차별을 시정하기 위한 적극적인 행동을 막고 있는 것이라고 봅니다.
종합해보면 차별을 차별이라 느끼지 않는 이들 또한 결국은 (스스로 인지하지 못할지라도) 차별의 피해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나저나 ‘차별’이라는 말만 몇번을 했는지.. 어질하네요. ㅎㅎ
1)에 대해서는 이런 당사자성?!에 따른 구분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 노키즈존이라고 하면, 아이들이 혼자 들어가려다가 거부당한다기 보다는 부모님과 함께 들어가려고 할 때 거부당하는 경험이 더 많을 것 같은데요. (편견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런 대우를 받는 아이 본인은 이것이 차별이 아니라고 판단할 당사자성이 모호하며, 업주도 당사자에게 설명하고 양해를 바랄 의무감이 상대적으로 낮지 않을까 추측해 봅니다. 여러모로 중간자인 부모님 입장만 난처한 상황이 아닐런지..
2)카페 스스로가 정체성을 확실히 한다면 납득할 수 있지 않을까요. 특정 분위기나 목적을 상품으로 하는 곳이라면, 굳이 미리 차별하지 않더라도 문제가 될 시 공간의 일반적인 룰로써 제재를 요청해도 큰 문제가 없을 것 같습니다. 다만, 이를 미리 알 수 없는 형태의 공간이라면, 예를 들어 일반적인 '카페'라면 이 카페의 상품성이 충분히 세그먼트화 되어 있다는 취지를 이용객이 사전에 알 수 있을 정도의 어필이 있어야 된다고 봐요..ㅎㅎ 물론 물론 어렵겠지만, 이 목적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 채, 사람을 가려 받는다는 건, 당사자들에게는 기분나쁜 일일 수 있으니 노력이 필요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