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가 사라진 위험한 세계

이완
이완 인증된 계정 · 각자도생에서 사회연대로
2023/10/01
제사를 지내지 않은지 오래되었다. 이번 추석에도 가까이 사는 외가 친척과 식사만 했다. 외삼촌은 불만이 많았지만, 다른 사람은 다 만족했다. 요즘은 다 이런 추세인 듯하다. 그 덕에 많은 여성이 불평등한데 전통적이지도 않은 제사에서 벗어났다. 과거에 여자는 결혼한 남자 집안에 방문해서 제사 준비와 손님 맞이를 떠맡았다. 이제 어지간히 고집스러운 집이 아니면 제사를 간소화하거나 우리집처럼 식사모임으로 대체한다. 우리집은 나름 선구자였다. 

그런데, 제사가 사라진 것이 마냥 좋은 일일까? 불평등하고 근본 없는 제사는 사라져도 상관 없지만, 죽은 구성원을 함께 기억하며 가족을 결속시키는 행사 그 자체가 사라져도 괜찮을까?

1. 우리가 제사를 지내는 이유.

고대 그리스와 로마 사람은 어떤 신을 주로 믿었을까. 물론 하늘의 제왕 제우스를 가장 두려워했다. 그러나 일상 속에서는 화로와 가정을 보호하는 헤스티아를 굉장히 존숭했다. 물론 우리가 아는 그리스로마신화에는 헤스티아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아무래도 전쟁 영웅 위주의 이야기가 주로 전해진 탓에, 올림피아에서 화로를 지키는 헤스티야는 나설 자리가 많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기록을 보면 헤스티아는 제우스 못지 않게 신성하게 여겨졌다. 

특히 로마 사람은 헤스티아(라틴어로 '베스타')를 나라의 수호신으로 모셨다. 헤스티아의 신전은 원로원이나 독재관도 함부로 대하지 못할 정도로 신성했고, 헤스티아의 무녀는 당시 일반여성은 물론 남성도 누리기 어려운 특권을 보장받았다. 

그리스와 로마 사람이 헤스티아를 아낀 이유는 생활방식인 듯하다. 그리스 로마 사람들은 화로에 모여서 생활했다. 당시 기술로는 아무 곳에서나 불을 지피기 어려웠던 탓에, 화로는 식사와 방한 대책에 꼭 필요한 시설이었다. 헤스티아는 그런 화로를 상징하는 여신이었다. 자연히 헤스티아는 제우스만큼 격이 높았다. 그리스로마신화에서도 헤스티아는 제우스와 포세이돈도 손 대지 못한 처녀신으로 나온다. 그만큼 그리스와 로마 사람들은 헤스티아와 화로를 중요하게 여겼다. 

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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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분별한 자기계발론과 자유방임주의에 맞섭니다. 법치국가와 사회연대를 결합하려는 자유주의적 사회주의자입니다. 더칼럼니스트 창간 1주년 기념 칼럼 공모전 당선 얼룩소 에어북 공모 1회차 선정 '함께 자유로운 나라' 출간 얼룩소 에어북 공모 6회차 선정 '좌업좌득'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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