넬리 아르캉 <창녀> : 너의 어머니, 아내, 누이, 그리고 딸

신승아
신승아 · 삐딱하고 멜랑콜리한 지구별 시민
2023/09/17
인터넷 서점 알라딘 도서 미리보기 캡쳐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의 계급은 남편, 아버지, 아들에 의해 결정된다. 남성은 태어남과 동시에 '시민권'이 부여되지만, 여성이 사람대접을 받으려면, 반드시 남성의 몸을 매개해야 한다. 유년기와 청소년기에는 아버지의 딸로, 청년기와 중 · 장년기에는 남편의 아내로, 노년기에는 아들의 어머니로 인정받아야 '명예'를 획득할 수 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명예는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는다. 사랑받는 딸이 되려면 최소 중산층 계급 이상의 아버지를 두어야 하고, 현명한 아내로 살려면 돈과 권력을 가진 남편이 필요하다. 마찬가지로 훌륭한 어머니가 되려면 잘 키워 명문대에 보낸 '아들'이 있어야 가능하다. 만일, 이 가운데 단 하나라도 잃게 되면 '그 여자'의 명예는 하루아침에 나락으로 떨어질 확률이 높다. 
 
예를 들어, 가난한 노동자 아버지를 둔 딸이나 장애인 부모를 둔 딸은 '건드려도 뒤탈 없을 계집' 정도로 여겨지거나 값싼 동정의 대상으로 취급된다. 이혼한 여성과 사별한 여성은 단지 '남편'이 없어졌다는 이유로, 남자들의 '공공재'로 전락하며, 딸만 가진 어머니는 존경받지 못한다. 이들처럼 명예가 없는 여성들은 '성녀'의 지위를 얻지 못했으므로, '창녀'와 다를 바 없는 신세가 된다. 아니, 굳이 멀리 갈 것도 없이 한국 사회가  '자취하는 여성'을 얼마나 천시하는지 생각해 보라. 혼자 생계를 꾸리는 여성들을 향해 '헤픈 여자'라고 손가락질하며 혀를 끌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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