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급투표’라는 환상과 새로운 ‘공동전선’
2023/04/19
‘계급투표’의 불가능성과 계급배반투표
4.19혁명과 6월항쟁 그리고 촛불혁명 이후 우리 삶은 바뀌었는가. 노동자 ‧ 비정규직 ‧ 저소득층과 같은 하층계급을 대변하겠다는 진보정당들이 선거에서 득표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현실은 여전히 한국사회에서 계급투표가 요원하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선거판에서뿐만 아니라 어떤 경우라도 이제는 정말, 아무도, ‘계급’이라는 말을 직접적으로 입에 담지 않는다.
보수정당의 정치인들이야 애초에 계급 개념의 필요를 부인하는 족속들이었지만, 이제는 진보진영의 인사들도 ‘계급’이라는 용어를 쓰기 저어한다. 그것은 마치 마법사들이 ‘볼드모트’의 이름을 함부로 발설하지 못하는 두려움과 유사해 보인다. 이 말은 역설적으로 한국사회에 ‘계급’이라는 말이 소환하는 정치적 긴장과 사상적 충격이 여전히 강하게 남아 있다는 뜻이겠다. ‘계급’이라는 호명은 마치 주술처럼 적색공포를 환기하는 동시에 현대사의 박제된 유령을 살려낸다.
또한 역대 수많은 선거결과에서 보듯 ‘반(反) 계급투표’ 혹은 ‘계급배반투표’가 더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자리 잡게 되면서, 특정계급을 겨냥하는 정책이나 강령은 효력이 없는 것을 넘어 반작용을 일으키는 요소로 간주되곤 했다. 하층계급의 많은 사람들이 보수정당에 표를 준다. 하층계급이 복지와 분배 정책에 관심이 적은 보수정당을 지지하는 현상은 고전적인 계급이론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윤석열 정권의 등장은 민주당 ‘내로남불’ 세력의 재집권을 막아야 한다는 민의의 발현이었다. 지난 대선은 개인의 허약한 윤리성을 비대한 공적 자아로만 대신하려 했던 이재명, 조국과 같은 이들을 더 이상 허락지 않겠다는 시민들의 의지를 확인한 선거였다. ...
@데모스 감사합니다.
우리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
@김재경 네. 시기에 따라, 또 대상에 따라 달리 수행된 조사나 수집된 데이터들에 따라 계급투표에 대해서는 다르게 평가내릴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제 글에 이어쓰여진 글이나 댓글들만 봐도 어느 분은 한국에 계급투표가 없는데 너는 무슨 계급투표를 해야한다고 하냐고 말씀하시는 분이 있고, 또 한 분은 한국 사회에 반계급투표 성향이 보이지 않으니 제 글을 고치라 합니다. 이렇듯 계급투표는 한국 사회에서 편의에 따라 사용되는 전략인 것 같습니다. 반계급투표는 정치 현실을 탄식하는 소재로 사용되고 있기도 하고요. 유권자의 선택은 예민한 갈대와 같아 일관되지도 또 단일하지도 않습니다. 어떻게 변할지 도무지 알 수 없습니다. 계급환상으로 계급성을 전유하려는 정치적 포지션을 경계하자는 주장이었습니다. 차라리 자신의 처지와 조건을 명민하게 파악한 유권자들이 적극적으로 계급투표를 통해 지지해도 신뢰할 수 있도록 정당들이 입장과 태도를 바로 정하는게 우선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직장 때문에 시간 내서 글 쓰시기 힘들텐데, 이렇게 정성껏 댓글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건강 잘 돌보시고요.^^
학자마다 현상 자체에 대해선 다른 해석을 많이 할 수 있는 부분인데, 현상만 보았을 때 미국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건 소득 수준이 낮을수록 보수 정당을 지지합니다. 다른 분이 답글로 2014년 논문을 들고 오셨던데, 가능한 해석일 수 있지만 최근 5년 20대의 보수정당 지지를 보면 바로 반론이 되는 내용이기도 했죠. 20대가 진보 정당을 더 지지한 적도, 보수 정당을 더 지지한 적도 있으며 특히 최근 5년 사이의 20대 여성과 남성의 지지정당 차이는 심각합니다. 하지만 김건희 여사 문제에 대한 여론조사 등 20대가 일치하는 모습이 나타나는 지점이 있기도 해요. 기존 정당의 기능 중 하나인 사회 균열 통합 측면에서 있어서 지금의 거대 정당이 충분히 흡수하지 못하는 모습이 보이고 있죠.
소득과 교육이 상관관계가 잘 나타나는 변수임을 감안하면, 교육 수준이 낮을수록 극단적인 선전에 휘둘릴 확률이 더 높을 수 있다는 해석도 가능합니다. 재밌는 게 미국에서도 진보 진영과 보수 진영의 전략이 다르게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고 해석도 많이 해요.
4.19 기념해서 글 재밌게 써 주셨는데, 시간적 여유는 핑계일 거 같고 입사 2개월차라 그런지 뭔가 체력이 부족해서 답글 형태로 길게 같이 다뤄보기 어렵네요 ㅠㅠ 대학원 졸업한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좀 가물가물하고.. 글 유익하게 읽고 갑니다!
+덧글 달면서 생각난 건데, 다른 국가도 그렇지만 한국도 조사 시기에 따라 전반적인 이념 스펙트럼 구조의 변화가 나타납니다. 박근혜 탄핵 시절에는 전반적으로 진보적 성향으로 바뀌는 것이 그 예시입니다.
@서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mare8099 네. 맞습니다. 투표와 지지 정당 선택이 계급정향이 아닌 비합리적 동기에 의해 이뤄지는 면이 있습니다. 감정적이고 비합리적인 동기를 자극해 표를 모으는 전략은 지금껏 거대양당이 잘 해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말씀하신 대로라면 오히려 진보정당이 계급에 발목을 잡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운 부분일 수 있겠네요. 그런데 제가 보기에는 우리나라의 진보정당(이라 쓰고 군소정당으로 취급받는 적녹보 계열 정당들)이 오히려 선명성과 그 계급성을 대변하는 능력이 오히려 부족하거나, 엘리트주의로 일관하는 게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계급성이 선명한게 아니라 오리려 그들이 보여준 정치성이 추상적이어서 문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읽어주시고 코멘트 주셔서 고맙습니다. 귀담아 듣겠습니다.
좋은 글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글이 어렵게 읽히네요. 다만, 정치외교학을 학사로나마 전공했던 사람으로서 현실 정치와 책 속 정치의 가장 큰 간극이 보이는 단어가 저에겐 ’계급 투표’입니다. ”인간은 (경제적 이해관계의 계산이 가능한) 합리적 존재“라는 근대적 가치관에 근거한 계급 투표는 전 허상이자 신화라고 봅니다. 특정 계급이 계급에 배반한 투표를 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원래 투표는 (이해관계에 근거한 것이 아닌) 감정적 행위라는 점이 여러 경험적 사례를 통해 증명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전 현대적 인간이 ”계급 투표“를 하는 게 아니라 “인상 투표“를 하는 존재라고 봅니다. 이 전제가 맞다면, 정당의 득표 전략은 인간의 합리성이 아닌, 비합리성에 주목해 짜여져야 맞다고 봅니다. 선생님의 글은 ’합리성‘과 그에 기반한 인간 행위의 예측 가능성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이런 식의 전제론 진보 정치의 미래는 제대로 그려질 수 없다고 전 조심스레 주장해 봅니다. 많은 고민을 하게 하는 글, 감사합니다.
@최서우 우리는 살면서 상대와 관계를 맺으면서 은연중에 서로의 계급과 조건 따위를 가늠해 보기도 합니다. 차라리 계급이 전면화 되고 그 계급에 맞는 정치적 요구와 걸맞는 투쟁이 익숙해지는 게 낫지 않나 생각이 들때가 있습니다. 세상의 변화, 좀더 급진적으로 표현하면 세계의 변혁이야말로 그런 자각과 부단한 깨뜨리기를 통해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니까요. 계급을 추상적인 관념으로만 여기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의견주셔서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계급은 보이지않게 존재하고 인간의 욕망은 무계급을 원하지않을수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현대에 와서 계급이 무너졌고 의미가 없어졌다고 하나 , 그리고 제아무리 평등을 외쳐도 인간평등애를 기본으로 두지않으면 차별과 끊임없이 투쟁을 해야할것같습니다.
생명체 모두가 소중함을 깊이 인식하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4.19 혁명의 의미를 다시한번 생각해봅니다
글이 어렵게 읽히네요. 다만, 정치외교학을 학사로나마 전공했던 사람으로서 현실 정치와 책 속 정치의 가장 큰 간극이 보이는 단어가 저에겐 ’계급 투표’입니다. ”인간은 (경제적 이해관계의 계산이 가능한) 합리적 존재“라는 근대적 가치관에 근거한 계급 투표는 전 허상이자 신화라고 봅니다. 특정 계급이 계급에 배반한 투표를 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원래 투표는 (이해관계에 근거한 것이 아닌) 감정적 행위라는 점이 여러 경험적 사례를 통해 증명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전 현대적 인간이 ”계급 투표“를 하는 게 아니라 “인상 투표“를 하는 존재라고 봅니다. 이 전제가 맞다면, 정당의 득표 전략은 인간의 합리성이 아닌, 비합리성에 주목해 짜여져야 맞다고 봅니다. 선생님의 글은 ’합리성‘과 그에 기반한 인간 행위의 예측 가능성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이런 식의 전제론 진보 정치의 미래는 제대로 그려질 수 없다고 전 조심스레 주장해 봅니다. 많은 고민을 하게 하는 글, 감사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젠더와 생태, 성소수자 이슈 등을 청년노동-노인복지의 문제와 결합해 사고하는 태도이며 진보정당은 이 새로운 정치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 안아야 한다.
진보정치의 방향성을 제시해주는 말인거 같습니다.
다만 '사회적 약자를 종함적으로 고려하는 정치' 를 위한 자본주의적 "생산성" 의 증가에 대해서도 고민이 필요한듯 합니다.
계층과 계급….현대사회에서 단어의 의미가 적당한지도 의문입니다. 인간의 복잡다단한 욕망을 계급으로 담아내기엔 시대가 세상이 달라진 거 아닌가 싶네요. 자칭 진보주의자들이 경계하길 바라는 마음도 큽니다. 보수와 진보를 떠나 선민의식이 깔린 내면들이 거슬리거든요.
좋은 글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계급은 보이지않게 존재하고 인간의 욕망은 무계급을 원하지않을수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현대에 와서 계급이 무너졌고 의미가 없어졌다고 하나 , 그리고 제아무리 평등을 외쳐도 인간평등애를 기본으로 두지않으면 차별과 끊임없이 투쟁을 해야할것같습니다.
생명체 모두가 소중함을 깊이 인식하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4.19 혁명의 의미를 다시한번 생각해봅니다
@서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mare8099 네. 맞습니다. 투표와 지지 정당 선택이 계급정향이 아닌 비합리적 동기에 의해 이뤄지는 면이 있습니다. 감정적이고 비합리적인 동기를 자극해 표를 모으는 전략은 지금껏 거대양당이 잘 해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말씀하신 대로라면 오히려 진보정당이 계급에 발목을 잡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운 부분일 수 있겠네요. 그런데 제가 보기에는 우리나라의 진보정당(이라 쓰고 군소정당으로 취급받는 적녹보 계열 정당들)이 오히려 선명성과 그 계급성을 대변하는 능력이 오히려 부족하거나, 엘리트주의로 일관하는 게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계급성이 선명한게 아니라 오리려 그들이 보여준 정치성이 추상적이어서 문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읽어주시고 코멘트 주셔서 고맙습니다. 귀담아 듣겠습니다.
@최서우 우리는 살면서 상대와 관계를 맺으면서 은연중에 서로의 계급과 조건 따위를 가늠해 보기도 합니다. 차라리 계급이 전면화 되고 그 계급에 맞는 정치적 요구와 걸맞는 투쟁이 익숙해지는 게 낫지 않나 생각이 들때가 있습니다. 세상의 변화, 좀더 급진적으로 표현하면 세계의 변혁이야말로 그런 자각과 부단한 깨뜨리기를 통해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니까요. 계급을 추상적인 관념으로만 여기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의견주셔서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동영 병행해야죠. 평등과 공정이야마로 자본주의적으로도 가장 효율적으로 사회의 안정과 평화는 물론 번영과 성취를 이룩하게 해주는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무슨 염려하시는지 알고 있습니다. 주신 말씀 새겨 듣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우리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