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과 구멍가게

박순우(박현안)
박순우(박현안) · 쓰는 사람
2023/03/11
  그런 날이 있다. 마냥 쉬고 싶은 날. 쉬어갈 수 있는 글을 읽거나 쓰고 싶은 날. 힘을 준 문장도, 애써서 하고 싶은 말도 없는 그저 물 흐르듯 따라갈 수 있는 그런 글. 오늘이 마침 그런 날이다. 그런 글을 읽을 수 없을 때는 내가 그런 글을 써야지 마음을 먹는다. 그러려면 우선 몸부터 힘을 빼야 한다. 어깨도 손가락도 최대한 힘을 빼고, 노트북 위에 털썩 올려놓는다. 이런 글을 쓸 때는 머리도 채우는 게 아니라 비운다. 그 어떤 무게도 싣지 않는 글을 쓰리라. 마음 가는 대로 쓰리라. 읽어도 읽어도 더 읽고만 싶은 글을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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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주 토요일은 아이들에게 용돈을 주는 날이다. 일요일도 아니고, 월요일도 아니고, 어쩌다 보니 토요일이 되었다. 아직 쥐어주는 돈은 많지 않다. 깡시골이라 돈을 쓸 곳 자체가 없기도 하고, 시험 삼아 주는 용돈이라 적은 금액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아침부터 둘째가 지갑을 들고 돌아다니며 용돈을 외친다. 지갑 두둑이 돈이 있는 첫째와 달리 둘째의 지갑에는 고작 600원이 남았다. 지폐를 채우고 싶은 욕심에 아침부터 성화다.

  장사를 하는 집이라 다행히 각종 지폐가 늘 구비돼 있다. 돈지갑에서 천 원짜리 몇 장을 꺼내 일부는 첫째 몫으로, 일부는 둘째 몫으로 준다. 둘째는 받자마자 신이 나서 용돈기입장을 꺼내든다. 쓰는 법을 알려주었더니 이제는 자신들이 알아서 적는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연필을 쥐고 남은 돈이 얼만데, 얼마를 더 용돈으로 받아 총 얼마가 되었다고 적는다. 삐뚤빼뚤 글씨도 맞춤법도 엉망이지만, 무언가를 적는 것만으로도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워 그냥 둔다. 수천 원의 돈을 수십만 원으로 적었기에, 그것만 고쳐주었다.

  "엄마 나 껌 사러 가도 돼?" 
동네에는 아주 작은 구멍가게가 하나 있다. 작고 작은 말 그대로 구멍가게. 이웃 삼춘이 가게에 딸린 방에서 기거하면서 운영하는 오래된 가게다. 용돈을 주기 전에도 가끔 아이들 손에 오백 원짜리를 쥐어주면, 아이들은 그 동전을 들고 쪼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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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저것 씁니다. 『아직도 글쓰기를 망설이는 당신에게』를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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