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운동에 대한 오해 - 우리가 당황한 한국사

이문영
이문영 인증된 계정 · 초록불의 잡학다식
2024/02/29
3.1 만세운동은 우리나라 역사에 참으로 엄청나게 중요한 사건이었다. 우리나라 헌법 전문에 제일 먼저 등장하는 사건도 바로 3.1 운동이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ㆍ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3.1 운동의 결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었다. 왕조였던 대한제국이 멸망한지 불과 9년밖에 지나지 않은 때였는데 불구하고, 우리는 왕조를 부활하는 대신 공화국의 시민이 되는 길을 선택했다. 실로 엄청난 일이다. 그런데도 우리나라 사람들 중에는 3.1 운동을 별 거 아닌 만세나 부르다 실패한 사건으로 치부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다보니 대충대충 알고 있는 이야기로 3.1 운동을 평가하곤 한다. 그런 당황스러운 오해들에 대해서 이야기해볼까 한다.
민족대표 33인 (민족기록화)

1. 3.1 운동 민족대표는 대부분 변절했다는 썰

거짓말이다. 3.1 운동 민족대표는 모두 33인. 이 중에 변절자는 단 세 명이었다. 3.1 운동에는 민족대표 외에 3.1 운동을 확산시키기 위한 백업 요원들이 있었다. 이들 중에는 독립선언서를 기초한 최남선도 포함된다. 이 백업 요원들까지 합해서 총 48명이 되는데, 그렇게 보아도 불과 4명의 변절자가 있었을 뿐이다. 3.1 운동에 참여한 민족대표는 고문에 미치거나 사망하기도 했고 불구의 몸이 되어 풀려난 뒤 사망한 경우도 있었다. 대부분의 민족대표는 풀려난 뒤에도 일제의 감시를 받아가면서 독립운동을 계속 이어갔다.

2. 3.1 운동 민족대표는 만세나 부르면 독립할 줄 믿은 멍청이라는 썰

전혀 아니다. 3.1 운동이 일어난 배경에는 '민족자결주의'가 있었다. 미국 28대 대통령 우드로 윌슨은 1918년 1월과 2월에 민족자결주의를 천명한 바 있다. 윌슨은 미 의회 연설에서 이렇게 말한다.

한 민족이 국제회의나 적대국 사이의 합의에 의해 한 통치자에서 다른 통치자로 양도될 수 없다. 민족적 열망은 존중되어야 한다. 민족은 그들 자신의 동의에 의해서만 통치될 수 있다...
이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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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텔·이글루스에서 사이비•유사역사학들의 주장이 왜 잘못인지 설명해온 초록불입니다. 역사학 관련 글을 모아서 <유사역사학 비판>, <우리가 오해한 한국사>와 같은 책을 낸 바 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 역사를 시민에게 쉽게 전달할 수 있는 책들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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