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몰의 기억

박선욱 · 시, 동화, 소설 및 평전을 씁니다.
2023/02/12
일몰의 기억
   
   
박선욱
   
   
잠수교 위를 지나면 알 것 같다 하루가 왜 저무는지, 깜깜한 밤 인생의 등불이 어떻게 켜지는지 검푸른 물 위에 어둠 풀어질 때 사람들은 깊은 속도의 그늘 속으로 빨려들어간다 저 멀리 노을이 진다 산비탈에 내려와 조그만 집과 창틀을 그러안는 그리움의 색깔 흘러가는 건 물결만이 아닌 듯 풍경도 세월과 매한가지로 사람과 더불어 흘러간다 한때 가슴을 불인두로 지지던 젊은 날의 생채기도, 쓰라린 눈물 훔치며 인파를 헤치던 열정의 숲도, 이젠 더 이상 넘실거리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들은 이 세상 어딘가에 간직되어 있을 뿐 결코 사라진 게 아니다 두꺼운 얼음 속 실개천이 흐르듯, 살갗 아래 실핏줄이 흐르듯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 해도, 저 혼자 흐르고 또 흐를 것이다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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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실천문학》 으로 등단. 시집 《회색빛 베어지다》 《눈물의 깊이》 《풍찬노숙》, 인물이야기 《윤이상》 《김득신》 《백석》 《백동수》 《황병기》 《나는 윤이상이다》 《나는 강감찬이다》 등. 《윤이상 평전: 거장의 귀환》으로 제3회 롯데출판문화대상 본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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