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자키 하야오의 날지 못하는 남자들
2023/09/11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을 좋아한다. 고등학생 때 <붉은 돼지>를 처음 본 이후, <이웃집 토토로>,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천공의 섬 라퓨타>, <모노노케 히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하울의 움직이는 성>, <벼랑 위의 포뇨>, <바람이 분다> 등 하야오의 장편 애니메이션은 대부분 봤다.
그래서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을 잘 안다고 생각했다. 주도적인 여성 주인공, 하늘을 나는 비행에 대한 집착과도 같은 열정, 문명에 맞선 자연과 생태주의. 이 정도면 그의 작품에 관해 충분히 알고 있다고 여겼다.
하지만 그건 내 착각이었다. <오카타 토시오의 성인을 위한 교양 - 일본 애니메이션 편>과 <모성의 디스토피아>라는 일본 서브 컬처 비평서에서 하야오 관련 부분을 읽고 난 후, 내가 사실은 하야오의 작품을 피상적으로 이미지만 즐겼을 뿐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중에서 특히 <모성의 디스토피아>에서 <모노노케 히메>의 주인공 아시타카를 두고 ‘어느 쪽도 선택하지 못하고 관찰만 하겠다’는 하야오의 허무주의가 잘 드러난 작품이라고 비평한 부분이 인상 깊었다. 여자 주인공 비중이 훨씬 높은 편인 하야오의 작품 중에서 가장 긍정적인 남자 캐릭터가 아시타카라고 생각해 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허무주의라니?
1 - 모노노케 히메/ 선택하지 않는 남자, 아시타카
<모노노케 히메> 스토리를 살펴보면 아시타카는 확실히 뛰어난 능력에 훌륭한 인품을 타고났지만, 그는 마지막까지 산(자연)과 에보시(인간) 어느 쪽 편에도 완전히 가담하지 않는다. 언뜻 보면 그는 모노노케 히메인 산의 편에 선 것처럼 보인다. 시작에서 아시타카는 인간(아마도 에보시)에게 당한 재앙신에게 저주를 받아 마을을 떠나 살아 나갈 방도를 찾아야 했다. 그렇다면 자연을 무분별하게 파괴하는 인간을 말리고 문명에서 자연으로 복귀하는, 최소한 자연과 어우러지는 길을 찾는 것이 이야기 구조로 봐도 옳다.
@장삐오 저도 참 좋아해서 여러 번 본 작품인데 이제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런 면이 있다고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좋아하게 되는 마성의 작품들인 것 같습니다 :)
원령공주, 붉은돼지 모두 여러 번 감상한 작품인데 볼 때마다 마음 한구석 휑~ 함이 있었거든요. 오늘 그 이유를 알았네요. ^^
@강부원 하야오는 누구보다 평화와 자연을 사랑하는 것 같지만, 동시에 전쟁과 폭력 장면 묘사도 무척 뛰어난 거장이죠. 그걸 그저 멋진 그림과 연출로만 봤을 때는 별 생각 없었지만, 조금더 들여다 보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패전국의 자의식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만약 하야오가 미국이나 영국, 프랑스 같은 나라에서 태어났다면 아마 2차 세계대전 정도를 배경으로 멋들어진 공중전 영화나 애니메이션을 만들지 않았을까 싶네요.
탁월한 해석입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세계관 속에 숨겨 있다 적발되는 군국주의의 본질은 사실 비루한 남성성의 일단인 경우가 많죠. 붉은돼지, 제로센 저도 드문드문 이런 생각이 든 적이 있었는데, 그래서 더 재밌게 읽었습니다.
탁월한 해석입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세계관 속에 숨겨 있다 적발되는 군국주의의 본질은 사실 비루한 남성성의 일단인 경우가 많죠. 붉은돼지, 제로센 저도 드문드문 이런 생각이 든 적이 있었는데, 그래서 더 재밌게 읽었습니다.
원령공주, 붉은돼지 모두 여러 번 감상한 작품인데 볼 때마다 마음 한구석 휑~ 함이 있었거든요. 오늘 그 이유를 알았네요. ^^
@강부원 하야오는 누구보다 평화와 자연을 사랑하는 것 같지만, 동시에 전쟁과 폭력 장면 묘사도 무척 뛰어난 거장이죠. 그걸 그저 멋진 그림과 연출로만 봤을 때는 별 생각 없었지만, 조금더 들여다 보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패전국의 자의식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만약 하야오가 미국이나 영국, 프랑스 같은 나라에서 태어났다면 아마 2차 세계대전 정도를 배경으로 멋들어진 공중전 영화나 애니메이션을 만들지 않았을까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