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치는 여가와 이상적 여가

이건해
이건해 · 작가, 일본어번역가. 돈과 일을 구함
2023/04/26


빨리 즐기는 콘텐츠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뇌내 보상 체계에 이상이 생겨 점점 더 자극적인 것을 찾게 되고 그밖의 것들은 차츰 재미없어진다고 하는데, 내가 바로 그런 상태인 것 같다. 근래에 들어 뭘 해도 오래 참고 기다리기가 힘들고, 만사가 다 재미없다.

특히 요즘 들어서 본 영화들은 대체로 타율이 낮았다. 팬으로서 아무리 재미없어도 재밌게 볼 작정이었던 ‘던전 앤 드래곤’과 이정재, 정우성이 나온다기에 벼르고 있던 ‘헌트’를 제외하면 대체로 실패뿐이었다. ‘언차티드’는 원작 게임을 재미있게 했고, 주연이 된 톰 홀랜드도 좋아해서 무척 기대했으나, 그냥 흔해빠진 형식으로 수수께끼를 풀고 악당과 경쟁하며 숨겨진 보물을 찾지만 결국은 동료만을 얻게 된다는 내용에 가까웠다. 못 봐줄 정도는 아니지만 비슷한 영화들보다 나은 게 별로 없었다. 하기야 애초에 원작 게임을 하면서 ‘와, 이거 진짜 영화 같은 게임인데?’하고 감탄했던 것을 영화로 옮겨버리니 감동할 이유의 상당 부분이 증발한 셈이다. 드라마로 계속 나온다면 활극을 기대할 만하겠지만…….

‘서치 2’도 전작을 아주 감탄하면서 봐서 기대한 것에 비해 범작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전작은 작중 모니터에 비친 영상만을 보여준다는 형식도 참신하고 이야기도 반전을 거듭하는 추리극이라 정말 멋졌는데, 후속작은 참신성도 잃을 수밖에 없었고, 이야기도 중간부터는 대체로 짐작할 만하게 흘러갔다. 재미는 있었지만 심심한 편이었다.

후속작 개봉으로 여기저기서 얘기가 들리기에 의무적으로 본 ‘아바타’의 전작은 실망의 도가니탕이었다. 하기야 개봉 당시에 컴퓨터 그래픽이 아주 높은 평가를 받았으니, 이것도 눈이 높아진 지금은 그다지 가점 요소가 아닌 셈이었다. 그리고 그래픽을 떼어놓고 생각한 아바타는 이래저래 기분 나쁜 요소가 많은 이야기였다. 아주 불순한 의도를 품고 나비족에 잠입한 주인공이 자연과 하나 되어 살아가는 나비족에게 감화된다는 것도 ‘미개하지만 조화롭게 사는 원주민의 지혜가 최고’라는 식의 무책임한 자연 숭상으로 느껴져 싫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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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미스터리를 주로 쓰고 IT기기와 취미에 대한 수필을 정기적으로 올립니다. 하드보일드 미스터리 소설 “심야마장-레드 다이아몬드 살인사건”으로 데뷔. SF호러 단편소설 ‘자애의 빛’으로 제2회 신체강탈자문학 공모전 우수상. 제10회 브런치북 출판공모전 특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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