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개가 아닌, 배치와 나열로. - 파트릭 모디아노 <네가 길을 잃어버리지 않게>

수
· 읽고 쓰고... 그렇게 놀며 삽니다.
2024/01/26
<네가 길을 잃어버리지 않게>, 파트릭 모디아노, 2014.
   
전개가 아닌, 배치와 나열로.
   
“오후가 저물 무렵, 다라간은 그때껏 샹탈 그리페에게 전화가 오지 않았다는 사실에 놀랐다. 여자는 분명 자기가 검은 드레스를 두고 갔다는 걸 알았을 것이다. 다라간은 여자의 휴대전화 번호를 눌렀지만 대답이 없었다. 신호가 가다가 어느 순간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가다보디 벼랑 가녘이 나왔고, 그 너머는 그냥 허공이었다. 그는 자문했다. 혹 이것이 없는 전화번호이거나, 샹탈 그리페가 휴대전화를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 아니 어쩌면 여자가 지금 살아 있지 않은 것은 아닐까.”(80)
   
“그 이름이, 마치 너무 빨리 벽을 훑고 지나가 포착할 수 없는 한 줄기 빛처럼 아주 어렴풋한 기억을 깨웠다.”(114)

노벨 문학상 수상자, 파트릭 모디아노   
망각을 문학으로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일단 가볍게 상상해보면, 아주 멀쩡해 보이는 한 인물이 모종의 사건을 계기로 차츰 기억을 잃게 되고, 마지막엔 아주 피폐한 몰골로 도시를 배회하는 최후, 이런 전개로서 망각을 표현하려 할 것이다. 그러면 편할 것이다. 독자들 역시 그 흐름대로 캐릭터를 이해할 수 있을 테니. 하지만 그것이 전개로서 이해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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