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원에서 멀어집니다

이건해
이건해 · 작가, 일본어번역가. 돈과 일을 구함
2023/07/03


오래 전부터 일본 애니메이션을 열심히 시청해왔다. 애니 시청자(흔히 말하는 오덕, 덕후)에 대한 세간의 평이 하루가 다르게 낮아져서 자랑스럽게 얘기하고 다닐 정도는 아니지만, 애니 시청은 오랫동안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취미 생활 중 하나였다.

그런데 새삼스럽게 이런 소리를 왜 하는가 하면,  요즘은 그렇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100퍼센트 즐거운 취미 생활의 자리를 유지할 수 있을 것 같진 않다.

일단 애니를 보고 있으면 안정적인 수입이 없는 처지에 '이런 거'나 보고 있어도 되는가 하는 불안감과 죄책감이 몰려든다. 이럴 시간에 어떤 방향으로든 나아가려는 노력을  해야 하는 게 아닐까? 차라리 먹고 사는 데에 도움이 되는 책 한 장이라도 더 보는 게 나은 것 아닐까? 그런 생각들을 지워버릴 수가 없다.

물론, 사람이라는 게 100퍼센트 생산적인 일만 하고 살 수도 없고, 그렇게 살다간 분명 어딘가가 망가지기 마련이니 인생의 숨구멍으로서 남겨둬야 한다고 자신을 설득하고는 있지만, 그런 이유를 떠올린다 해도 자신이 '그런 이유를 핑계 삼아 도망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은 지워버릴 수 없다. 공신력 있는 기관에서 '1일 필수 여가 시간' 따위를 발표하고 지키지 않는 사람은 노동 착취자 취급을 해준다면 또 모르겠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으니 어쩌겠는가? (물론 그런 일이 일어난대도 '자율학습 도망간 놈 나와!'와 비슷한 상황이겠지?) 

그래도 이런 죄책감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날 길이 없진 않으니, 내가 주로 사용하는 방법은 '꼭 해야만 하는 생산적인 일을 병행하는 것'이다.

가령, 사람이 건강하게 살려면 운동은 꼭 해야 하니 운동은 시간 낭비가 아니다. 그런데 운동을 하면서 눈과 머리는 놀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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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미스터리를 주로 쓰고 IT기기와 취미에 대한 수필을 정기적으로 올립니다. 하드보일드 미스터리 소설 “심야마장-레드 다이아몬드 살인사건”으로 데뷔. SF호러 단편소설 ‘자애의 빛’으로 제2회 신체강탈자문학 공모전 우수상. 제10회 브런치북 출판공모전 특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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