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궁을 찾아서
2023/01/25
칠궁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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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타공인 앉으라면 앉고 서라면 서는 순둥이 모범생의 기질이 충만하지만 가끔 나도 청개구리 근성을 발동시킨다. 이를테면 영하 17도 체감온도 영하 20도 아래, 이불 밖은 위험해 비명이 도처에서 튀어나오는 오늘 같은 날, 굳이 중무장을 하고 어딘가를 실컷 돌아다니는 일이다. 이런 날 누가 밖에서 일하라고 하면 하늘이 무너진 듯 난리를 칠 텐데 말이다. “이런 날씨에 어떻게 돌아다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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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건 몰라도 싸돌아다니기 좋아하는 것 하나는 천생연분인 아내도 같이 갈 기세였지만 오늘은 다른 이들과 약속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 혼자 이래저래 찾은 것이 수성동 계곡에서 윤동주 기념관으로 가는 인왕산 자락길이었다. 이후 청와대 쪽으로 내려와 청와대 공개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칠궁을 들어가 보고,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을 구경하고 교보문고에서 책 하나 사고 집에 들어오는 2만보 산책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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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번 가던 곳이라도 갈 때마다 다르게 보이고, 귀에 들어오는 것도 많아지며, 알게 되는 것 적지 않으니 할 말 또한 많아진다. 수성동 계곡길을 걷다가 만난 청계천 발원지 표지판 하나로도 허벌나게 많은 ‘구라’를 풀어낼 수 있겠거니와 대한민국 역사 박물관의 기획전시실 전시품들은 얼마나 주워섬길게 많던지.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은 시간 나시면 꼭 한 번 찾아가 보시기 바란다. 알 수 없는 한자와 형광등 같은 조명에 덩그라니 물건 올려놓은 옛날 박물관과는 대기권과 지하철 9호선 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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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오늘 처음 가 본 곳 얘기를 해 두는 게 좋겠다. 청와대 근처에 있는 칠궁은 조선의 왕들을 낳은 여인들이지만, 왕비 자리에는 오르지 못했던 후궁 7명의 신위를 모신 장소다. 본디 이 터의 주인은 드라마 <동이>의 주인공 숙빈 최씨였다. 어머니 신분 콤플렉스에 평생 시달렸던 영조가 어머니의 신주를 모신 육상궁을 세웠는데 여기에 1908년에 비슷한 처지, 즉 왕의 생모이나 왕비는 되지 못했던 후궁들의 신주가 다섯 개가 모셔지고 1929년에 영친왕의 생모인 엄비를 모신 덕안궁...
사학과는 나왔지만 역사 공부 깊이는 안한 하지만 역사 이야기 좋아하고 어줍잖은 글 쓰기 좋아하는 50대 직장인입니다.
결국 세월이 약 아니겠습니까 ^^
다툼의 연속 그 연속의 선상에서 끝을 내는 것은 언제나 세월뿐인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