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록] 유통기한이 없는 <중경삼림>
2023/01/26
살아본 적 없는 시절을 그리워하는 것 만큼 이상하고도 애틋한 일이 있을까? 그 시절의 공기나 풍경, 사람들을 마주해본 기억은 전혀 없지만, 조금만 더 일찍 태어났으면 좋았겠다고, 한 번만 그 때로 돌아가보고 싶다고 종종 생각한다. 영원히 불가능한 바람은 현실과 비현실이 섞인 채로 등장하는 누군가의 삶을 지켜보고 무언가를 들으면서 더욱 커진다. 실재하는 것보다 내 안의 상상으로 더 많이 채워진 허구의 세계를 갈망하는 걸지도 모르겠지만, 그렇다 할지라도 가보고 싶다. 90년대로.
90년대를 그리워하는 99년생의 기록, [99록] 1화 세월에 바래지 않는 ‘트렌디’ <롱 베케이션>
90년대 홍콩에 처음으로 접속한 날을 기억한다. 2016년 겨울, 수능시험일이라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되는 날. 그 날 <중경삼림>을 처음 봤다. 영화에 관심을 가진지 얼마 지나지 않은 터라, 말로만 숱하게 듣던 왕가위의 작품에 입문하게 된 날이기도 하다.
영화를 보는 내내 세상이 팽글팽글 도는 것만 같았다. 애인에게 실연 당한 남자 경찰 223(금성무)은 유통기한이 다 된 파인애플 통조림을 쥐고선 사랑의 유통기한은 만 년으로 하고 싶다고 읊조린다. 전화통을 붙잡고 울다가, 잔뜩 쌓아둔 파인애플 통조림을 입에 마구 집어넣는다. 그러다 술집에서 금발머리 여자(임청하)와 만나 대화를 나누지만 그가 기대했던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는 어둑한 새벽에 운동장을 달린다. 아마도 사랑을 잊기 위해서 또는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나는 이 남자의 절절함에 마음을 많이 빼앗겼다. 미모에 취한 걸지도 모른다. 아무튼 영화가 끝날 때 쯤엔 이 남자가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고싶었다. 하지만 영화는 완전히 다른 이들에게로 시선을 옮긴다. 나로서는 절망적인 전개였다.
나는 이 남자의 절절함에 마음을 많이 빼앗겼다. 미모에 취한 걸지도 모른다. 아무튼 영화가 끝날 때 쯤엔 이 남자가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고싶었다. 하지만 영화는 완전히 다른 이들에게로 시선을 옮긴다. 나로서는 절망적인 전개였다.
아직 극장에서 못봤는데 재개봉 하면 꼭 보러가고싶어졌네요 ㅎㅎ !
지금과 다른 영화 속의 90년대생들을 볼 수 있는 관전포인트까지 챙겼어요
다음 글도 기다리겠습니당
중경삼림에 대한 추억 공유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