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록] 세월에 바래지 않는 ‘트렌디’ <롱 베케이션>

오세연
오세연 인증된 계정 · 99년생 영화감독
2023/01/19

살아본 적 없는 시절을 그리워하는 것 만큼 이상하고도 애틋한 일이 있을까? 그 시절의 공기나 풍경, 사람들을 마주해본 기억은 전혀 없지만, 조금만 더 일찍 태어났으면 좋았겠다고, 한 번만 그 때로 돌아가보고 싶다고 종종 생각한다. 영원히 불가능한 바람은 현실과 비현실이 섞인 채로 등장하는 누군가의 삶을 지켜보고 무언가를 들으면서 더욱 커진다. 실재하는 것보다 내 안의 상상으로 더 많이 채워진 허구의 세계를 갈망하는 걸지도 모르겠지만, 그렇다 할지라도 가보고 싶다. 90년대로. 

90년대를 그리워하는 99년생의 기록, [99록] 연재를 시작합니다. 
 

영화가 일이 된 후로, 취미가 많이 사라졌다. 영화를 보고 책을 읽는 일이 숙제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영화를 만드는 중에는 더 심각했다. 어떤 영화든 나의 것과 비교하며 패배감을 느끼거나 부러움에 빠지고, 아주 가끔은 묘한 우월감에 취하느라 있는 그대로를 보지 못했다. 영화를 보는 것이 마음에 부담이 될 때쯤, 새로운 취미를 찾았다. 별 생각 없이 울고 웃고 내일을 살아갈 힘을 얻게끔 하는 존재는 바로 ‘일드(일본 드라마)’였다. 촌스러운 듯 하면서도 안정적이고 편안한 화면. 대체로 화이팅이 넘치는 주제의식. 밥을 먹으면서 보기에나 밤에 누워서 한 편씩 보기에나 적절한 길이. 알음알음 아는 얼굴들이 등장하는 반가움까지. 그렇게 근 3년 간 스무 편이 넘는 일드를 보게 됐다.

언제나처럼 일드를 보기 위해 왓챠를 뒤적이다 발견한 <롱 베케이션>(1996, 후지테레비)은 ‘보고싶어요’ 목록에 몇 년째 들어있던 작품이었다. 레전드 명작이라고 제목은 수십 번도 더 들어봤지만 좀처럼 손이 가지 않는 드라마이기도 했다. OTT의 바다에는 언제나 궁금한 영화와 드라마가 넘쳐나기 때문에, 정해진 우선 순위를 따르기보다는 그 날의 이끌림에 따라 선택하게 되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하나의 작품과의 만남은 운명과도 같아서 특별하다. 오랫동안 묵혀둔 <롱 베케이션>의 재생버튼을 누르고 13분쯤 지났을 무렵, 나는 소리를 질렀다. 너무나 잘 알고 있던 노래가, 너무나 적절한 타이밍에, 오프닝곡으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https://youtu.be/HiNQeQQJWg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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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영화 <성덕>을 만들고 필름에세이 『성덕일기』를 쓴 영화과 학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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