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처럼 무거운 영화가 전하는 묵직한 감동

김성호
김성호 인증된 계정 · 좋은 사람 되기
2023/09/23
한 친구가 말했다. 세상의 어느 외진 곳에 '내일'이라는 단어를 알지 못하는 종족이 있다고. 그 종족은 내일이라는 단어가 없어서 내일을 알지 못한다고 했다. 내일이 없어서가 아니다. 내일이라는 단어가 없어서 개념이 없고 개념이 없어서 알지 못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세상의 어떤 것은 말로부터 태어나기도 하는 것이다. 슬픔이란 단어가 있고서야 슬픔을 알게 되듯이.
 
같은 견지에서 단어 하나의 망실은 단어 하나의 문제가 아니다. 내일이 없음으로 어느 종족은 미래도, 희망도, 나아짐도 우리와 같은 정도로는 받아들이지 못한다. 단어의 소실은 곧 언어와 그 언어를 쓰는 이들의 세계가 축소된다는 뜻이다. 그 축소가 무조건 나쁘다고 할 수는 없겠으나 풍요롭지 못하다고는 할 수 있을 테다.

2017년 유럽에서 손꼽는 문학상인 메디치상이 책 좀 읽는다는 이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었다. 무려 22년 만에 이탈리아 작가가 상을 받은 때문이다. 파올로 코녜티의 소설 <여덟 개의 산>은 북부 이탈리아의 척박한 자연을, 또 그곳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삶을 쓸쓸하고 아름답게 그려내어 호평을 받았다. 움베르토 에코 이후 이탈리아 출신의 세계적 문학가가 드디어 등장한 게 아니냐는 평가가 쏟아졌을 정도다.

그로부터 5년 뒤 소설을 영상화한 동명 영화가 칸국제영화제에 초청됐다. 소설이 묘사한 웅장한 자연을 시각화한 작품은 심사위원상의 영광까지 안았다. 북부 이탈리아의 자연 속에서 사내 간의 우정, 아버지와 아들의 엇갈린 사연, 한 번에 스러지는 사랑, 거듭 괴로움과 마주하는 인간, 온갖 좌절과 상실, 그럼에도 이어지는 삶을 그려낸 역작이다.
 
▲ <여덟 개의 산> 포스터 ⓒ 영화사 진진

모두가 떠난 마을에서 여름을 보내는 소년

영화는 여름을 맞아 알프스 자락의 작은 마을 몬테로사에 들어온 모자를 비춘다. 교사인 어머니를 따라 마을로 들어온 소년 피에트로는 마을의 유일한 소년 브루노와 금세 친해진다.

브루노는 다들 떠나가고 남겨진 마을 주민 열한 명 중 하나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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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 서평가, 작가, 전직 기자, 3급 항해사. 저널리즘 에세이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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