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즈 와이드 셧> 부캐가 본캐의 삶을 흔드는 순간

고요한 · 책 파는 영화애호가
2023/06/29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부캐 전성시대다. 어지간히 유명한 사람들은 모두 하나씩 부캐를 만들고 있다. 일반인도 마찬가지다. 부캐의 유행에는 사회적 맥락도 있다. 정신과의사 하지현은 ‘사회적 정체성 속의 삶이 답답할수록 부캐에 대한 욕구가 커진다‘고 말한다. 부캐 대중화에 앞장 선 유재석과 이효리의 사례를 보자.
오랜 세월 연예인으로 활동해온 둘에게 대중이 원하는(혹은 그렇게 봐주길 바라는) 모습은 둘의 사회적 정체성을 꾸준히 강화하는데 일조했다. 각각 바른생활의 교본, 상업광고를 거부하는 채식주의자라는 강력한 본캐에 갇혀 운신의 폭이 자유롭지 못했다. 그러나 부캐를 통해 본캐에 메어있는 동안 충족시키지 못한 욕구들이 자연스레 해소됐고, 해방을 통해 나온 자유로움에 예민한 대중들이 더 크게 호응을 했을 것이다.
다만 부캐의 성공에는 전제조건이 있다. 본캐가 흔들림이 없어야 한다는 점이다. 유재석과 이효리는 ‘일인자’와 ‘슈퍼스타’라는 탄탄한 본캐가 있었다. 신인 트로트가수, 교포 헤어 디자이너(?)라는 외유를 하더라도 언제든 원점으로 돌아와 방향성을 잃지 않을 수 있던 것이다. 그럼 본캐가 흔들릴 때 부캐 활동은 어떤 양상을 띌까.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아이즈 와이드 셧>은 전면에 등장한 부캐 때문에 흔들리는 본캐의 심리를 치밀하게 그려낸다.


부캐로 떠나는 한밤의 오디세이

뉴욕의 잘 나가는 의사 빌 하포드(톰 크루즈)와 그의 부인 앨리스 하포드(니콜 키드먼)는 백만장자 지글러(시드니 폴락)가 주최한 크리스마스 파티에 초대를 받고 생각지 못한 사건에 휘말린다. 지글러의 주치의이기도 한 빌은 파티에서 처음 만난 여자 둘과 잡담을 나누던 중 지글러의 호출을 받는다. 지글러의 내연녀가 마약 과다복용으로 정신을 잃은 탓이다. 빌이 그녀를 치료하러 간 사이 혼자 남은 앨리스에게 헝가리 남자가 춤을 권하고 끈적하고 지독한 구애를 한다. 다행히 내연녀는 정신을 차리고, 앨리스는 구애를 뿌리친다.
문제는 다음 날이다. 부부는 파티에서 있었던 일을 서로에게 묻는다. 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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