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 뒤 장마’ 한반도 기후 바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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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26
게티이미지뱅크
흐린 날과 비 내리는 날이 지루하게 이어지고 있다. 장마가 길어지다 못해 우기가 된 게 아니냐는 이야기도 자주 나온다. 농담이지만, 이 말에는 절반의 진실이 있다. 장마는 길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한반도 기후는 우기와 비슷한 기후로 변해가고 있다. 어떻게? 장마 이후에 다시 ‘장마 시즌2’가 찾아와서다. 비와 비 사이의 간격은 짧아졌고, 강수량은 늘고 있다.

 

1. 장마 기간은 제자리걸음


기상청에 따르면, 장마는 “한국에 6월 하순부터 7월 하순까지 계속해서 비가 많이 내리는” 현상이다. “기상학적으로는 장마전선의 영향을 받아 비가 오는 경우”를 의미한다. 이 기간에 보통 매실 열매가 열려 동아시아권에서는 ‘매우(梅雨)’라고 불리기도 한다. 우산을 쓰고 길을 걷다 작은 초록색 열매를 본 적이 있다면, 대부분 매실이다.

1961년부터 장마를 기록해 온 기상청 데이터를 바탕으로 장마 기간을 살펴보면, 장마 기간은 1960년대와 지금 큰 차이가 없다. 아래는 장마 시작일과 종료일, 그리고 그 사이 기간을 표시한 차트다. 해에 따라 시작 및 종료 일자가 달라지고 기간도 들쭉날쭉하지만, 진행 기간과 시기가 확연히 달라지지는 않았다.
장마, 시작과 끝. 데이터 KMA, 그래픽 윤신영 alookso 에디터
장마 기간의 평균 날짜를 봐도 그렇다. 미세하게 늘어나긴 했지만 큰 차이는 아니다.
1961년 이후 장마일수의 변화. 데이터 KMA, 그래픽 윤신영 alookso 에디터
장마 기간에 비가 온 날의 수도 비슷하다. 다만 장마 기간 중 내린 강수량은 다소 증가한 모습을 보인다.
올해가 벌써 7월 말에 접어드는데도 아직 장마가 이어지고 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 역시 평년 추세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기상청의 장마 평년 기준에 따르면, 장마는 제주에서 7월 20일, 남부지방에서 24일, 중부지방에서 26일 끝난다. 25~26일이면, 이제 평년 종료일에 들어선 정도다.

장마 기간 중 비가 유독 많이 내릴 경우 장마를 더 길게 느낄 수 있다. 장마기간 중 비가 내린 날의 비율을 구해보면, 실제로 1961년 이후 조금 줄어들다 1990년대부터 다소 증가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아래 그래프). 
장마 기간 중 비가 온 날의 비율. 줄어들다 1990년대 이후 다시 증가 추세댜. 데이터 KMA, 그래픽 윤신영 alookso 에디터

그럼 올해는? 기상청이 제주 지역 장마 개시를 선언한 6월 19일부터 24일까지 전국 모든 관측소의 일 강수량 정보를 바탕으로 기간 중 비가 온 날 평균을 구해보면 55.7%로 역시 평범하다. 물론 장마는 아직 끝나지 않았기에, 7월 말 이후 길게 이어지며 많은 비를 뿌리는 뒷심을 발휘할 수도 있다. 역대 최장인 54일간 이어지며 많은 누적 강수량을 기록한 2020년처럼 말이다. 

 

2. 오히려 문제는 장마 이후다

사실 문제는 장마가 아니다. 장마가 끝난 뒤다. 장마 이후 여름에 다시 많은 비가 오는 경우가 늘고 있다. 원래 한반도는 장마가 7월 말 끝난 뒤, 북태평양 고기압의 영향에 들며 온도와 습도가 모두 높은 ‘습한 폭염’에 둘러싸인 8월을 보낸다. 이후 8월 말 북태평양 고기압이 남동쪽으로 후퇴하면 다시 비가 내린다. 아열대에서 만들어진 태풍이 쇠퇴한 북태평양 고기압 가장자리를 따라 북상해 한반도를 강타하기도 한다. 이 때 장마에 준하는 비가 내리면서 결과적으로 한반도는 장마철과 8월 말, 두 차례에 걸쳐 비가 많이 오는 ‘쌍봉’ 형태의 연중 패턴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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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는 그랬다. 하지만 패턴이 변하고 있다. 장마 전문가 손석우 서울대 교수는 7월 17일 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가 주최한 ‘기후위기와 여름철 자연재해, 어떻게 대비할까’에서 “8월 초엔 비가 적었는데 최근 이 양상이 달라졌다”며 “최근 26년간의 한반도 강수량을 보면 8월 초중순에도 비가 많이 와 6월 말부터 8월 말까지 내내 비가 오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아래는 1907년 10월부터 공식 기상 기록을 갖고 있는 서울의 사례다. 주별 강우량을 시대별로 구분해 모두 누적했다. 전반적으로 6월 말~7월 말 사이의 장마와, 8월 말의 시기가 두 개의 피크로 두드러져 보인다. 

1907년 이후 서울의 주 별 강수량을 누적했다. 6월 말~7월 말에 가장 많은 비가 내린다. 이 때가 장마다. 그 뒤 8월 말~9월 초에 또 한번의 작은 피크가 있다. 데이터 KMA, 그래픽 윤신영 alookso 에디터


이 그래프를 1980년을 중심으로 나눠서 보면 조금 다르다. 1980년 이전에는 장마 때 많은 비가 오고 8월 초에는 확실히 비가 적다. 이후 8월 말 비가 다시 조금 더 오는 경향이 보여 확연한 피크가 둘 보인다. 하지만 1980년 이후에는 두 피크가 아주 가까워졌고, 8월 초의 비도 늘었다.
데이터 KMA, 그래픽 윤신영 alookso 에디터


실제로 시기 별 평균 강수량을 나눠 살펴보면(아래 그래프) 8월 초의 누적 강우량 증가가 확연히 보인다. 장마 기간과 8월 말에도 강수량이 늘었지만, 8월 초의 증가가 극적으로 두드러진다. 이 경향은 서울만이 아니라, 전국을 봐도 두드러진다(단, 전국 데이터는 1973년 이후만 존재한다). “장마가 아니라 우기”라는 말이 아주 틀린 것은 아니란 뜻이다.
서울의 1907년 이후 6월 말~9월까지의 주별 평균 강수량을 세 시기로 나눠 살폈다. 장마에 해당하는 1기와 8월 말 이후의 비 구간을 3으로 했을 때, 그 사이에 해당하는 2의 상승이 극적이다. 이 때문에 장마가 끝나도 여름 내내 비가 이어지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데이터 KMA 그래픽 윤신영 alookso 에디터
 

3. 더 큰 문제, 집중호우

사실 비가 여러 날, 오래 내리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따로 있다. 폭우, 집중호우다. 집중호우는 늘고 있다. 손 교수는 얼룩소에 게재한 집현네트워크 글에서 “지난 40년 사이에 전국적으로 집중호우 발생 빈도가 점진적으로 증가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집중호우는 “3시간 누적 강우량이 60mm 이상 또는 12시간 누적 강우량이 110mm 이상일 경우”(기상청)나, “시간당 강수량이 30mm 이상인 경우”(학계)를 의미한다. 시간당 30mm면 운전시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비다.

집중호우는 전국적으로 증가 추세다. 1973년 이후 전국 관측소 데이터 156만 건을 분석해 보면, 6~9월 시간당 30mm 이상의 집중호우는 1970년대에 비해 현재 약 1.5배 늘어난 상태다(아래). 장마 기간이 포함된 6~7월과, 장마 이후 여름 비가 포함된 8~9월을 각각 나눠서 살펴보면, 전반적으로 횟수가 증가하는 가운데 특히 집중호우에 해당하는 시간당 30~100mm 비의 횟수가 급격히 늘어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더구나 지역에 따라 집중호우 집중도도 다르다. 손 교수에 따르면, 여름에 시간당 1mm 이상의 강수량을 기록한 대부분의 비는 산맥이 위치한 내륙에 많이 내린다. 하지만 집중호우는 다르다. 유독 남해안과 수도권, 한라산에 많이 내리며, 동해안과 내륙에는 적다. 수도권과 남부에서 유독 여름 비 피해가 잦은 이유다.

사실 한반도의 집중호우는 빈도와 함께 강도도 높아지고 있다. 시간당 100mm가 넘는 비가 내리는 극단적 강수가 늘고 있다. 2022년 강남 일대를 침수시킨 2022년 8월 8~9일 집중호우 때 서울 동작구에서는 시간당 141mm의 비가 내렸다. 서울 서초에서도 110mm가 넘는 비가 내렸다. 올해도 7월 10일 새벽 전북 군산에서는 한 시간에 146mm의 강수량을 기록했다. 비공식 역대 최다 강수량이다(관련 얼룩소 콘텐츠). 충남 서천군도 111.5mm를 기록했다. 

시간당 100mm 이상의 이런 폭우는 원래 도시보다는 산악지역에서 발생한다. 이젠 이런 비가 도시 도처에서 내린다.

집중호우는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손 교수에 따르면, 중국 양쯔강 주변과 일본 남부와 함께 한반도의 집중호우가 늘고 있다. 그리고 세계도 집중호우를 만나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4. "대기에 수증기가 꽉 차 있다"

7월, 양쯔강 상류에 위치한 중국 남부 도시 충칭시 4개 현에 폭우가 쏟아졌다. 가장 심했던 디안장 지역에는 하루 269.2mm의 비가 내렸다(지난 9~10일 중부지방 폭우 때 가장 많은 강수량을 기록한 군산이 하루 약 240mm가 내렸다). 최소 6명의 사망자가 발생했고 도로와 다리 등 인프라가 파손됐으며 4만 명 이상이 피해를 입었다. 경제 피해는 1130만 달러(156억 원)에 이르렀다. 세계 최대 규모의 댐 싼샤댐에도 홍수 대비 최고 경보가 발령됐다. 댐 수위는 7월 기준 가장 높은 161.1m에 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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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시아에서도 7월 집중호우로 200명 이상이 사망하고 수백만 명이 이주했다. 6월 말, 인도에서는 하루 사이에 230mm의 비가 퍼부었다. 이는 6월 한 달 내리는 평소 비의 양의 세 배에 해당했다. 이 비로 10여 명이 사망했다. 극한강우가 1950년 이후 세 배 늘었다는 분석도 나왔다. 인도와 남아시아에 6~9월 찾아오는 몬순이 심각해지면서 이런 극한호우(하루 동안 150mm 이상 내리는 비)는 더욱 심해질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구글 트렌드에서 집중호우(torrential rain)를 검색한 결과. 2004년 이후 꾸준히 증가하는 모습이다. 데이터 구글트렌드, 그래픽 윤신영 alookso 에디터


인도의 몬순은 지하수를 보충하고 농업을 가능케하는 수자원의 보고지만, 20세기 후반부터 극한호우가 증가하고 있다. 특히 북중부 일부 지역을 제외한 다른 곳의 강수량이 늘고 있다. 예측이 어려워 농업에도 불리해졌고, 건기 이후 갑자기 폭우가 내려 비가 땅에 흡수되지 못하거나 도시 인프라가 감당하지 못해 수해를 일으키기도 한다. 

캐나다 토론토에는 약 3시간 만에 평소 한 달 내릴 비가 내렸다. 16일 피어슨 국제공항에는 97mm의 비가 내렸는데 이는 공항 역대 5번째로 많은 비이자 7월 한 달 동안 내릴 비 전체에 맞먹는 강수량이었다. 100년에 한 번 내릴 비였다. 토론토가 이 정도 비를 겪은 것은 2013년 이후에만 세 번째다.
지난 7월 17~18일에는 이틀이 채 안 되는 시간에 경기도 파주시에 600mm가 넘는 비가 내렸다. 데이터 KMA, 그래픽 윤신영 alookso 에디터


한국도 예외 아니었다. 수도권과 북부를 강타한 17~18일의 폭우로 여러 지역이 물에 잠겼다. 경기도 파주는 이틀간 600mm가 넘는 폭우가 내렸고 강화, 철원, 서울 등이 뒤를 이었다. 경기 남부에서는 거리와 거주지가 침수됐다.

원인은 다양하다. 해수면 온도 상승도 그 중 하나다. 전 지구 해수면 온도는 2023년 3월 말부터 줄곧 해당일 역대 최고 기록을 갈아치우다 최근 조금 내려온 상태다. 2021년 연구에 따르면, 지구 기온이 1도 오를 때마다 인도의 몬순 강수량은 5.3%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참고할 얼룩소 콘텐츠). 

실제로, 지구 대기 중 수증기량은 증가한 상태다. 비가 돼 내릴 수 있는 대기 중 수증기의 양을 가강수량이라고 한다. 전 지구의 월 평균 가강수량을 1948년부터 확인해 보면, 2023년 이후 급격히 증가한 모습이 보인다(아래). 지구 대기는 지금 건드리면 물을 퍼부을 만반의 준비를 한 상태 같다.
물론 가강수량만으로 비 패턴을 100% 추측할 수는 없다. 하지만 대기중 습기가 그 어느 때보다 많다는 사실은, 지구에 내릴 비의 총량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비는 언젠가 땅으로 내려온다. 그게 순환하는 행성, 지구의 진리다. 인류는 그 비에 대한 대비가 돼 있을까. 다음 글에서는 대비책을 살펴본다.


by 윤신영 alookso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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