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미화 그림책 <다음 달에는> : 주거 난민들의 삶

신승아
신승아 · 삐딱하고 멜랑콜리한 지구별 시민
2023/09/07

약 4년 전,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주거 차별', '소득 차별'에 기반한 혐오 은어가 등장했다. 주택 소유 형태에 따라 계급을 나누고 '거지'라는 단어를 붙여 가난을 낙인찍는 놀이가 유행처럼 번진 것이다. 공공임대주택 휴먼시아에 살면 '휴거지', LH 사는 애의 줄임말인 '엘사', 빌라에 살면 '빌거지', 월세 살면 '월거지', 전세 살면 '전거지'라고 한다. 근면 성실함의 상징이었던 개근상도 요즘 초등학교 교실에서는 환영받지 못한다. 결석 한 번 하지 않고 학교에 꼬박꼬박 출석한 아이는 해외여행을 가본 적 없다는 사실이 증명되었기 때문에 '개근 거지'라고 불린다. 부모의 소득 수준에 따른 차별도 빼놓을 수 없다. 아이들은 부모의 월급을 숫자로 환산하여 '이백충', '삼백충'과 같이 벌레를 뜻하는 蟲(충)을 붙여 경멸한다. 어린 눈에 월평균 500만 원도 벌지 못하는 어른은 부모 구실 못하는 쓰레기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아이는 어른의 거울이다. 친구는 거지로, 친구의 부모는 벌레로 만든 초등학생들의 입에서 어른들의 증오가 겹쳐 보였다. 보다 명확한 진단을 위해 시간을 되돌려 2015년으로 가보자. 이 무렵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이 개인의 부와 명예를 결정짓는다는 표현의 신조어 '수저 계급론'이 생겨났다. 이후 무수저, 똥수저, 흙수저, 플라스틱 수저, 금수저, 은수저, 동수저, 다이아 수저 등 현대 사회의 新 카스트가 탄생했다. 다들 '금수저'로 태어나지 못한 것을 자조하면서도, 자신보다 가난한 사람들을 향해 '흙수저', '똥수저'라고 비하했다. 돈으로 사람 깔아 뭉개는 '인성 거지' 어른들을 보고 자란 아이들에게 순수를 바란다면, 그야말로 양심 없는 짓이다. 수많은 수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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