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 녹음은 지독하게 어려운 일

이건해
이건해 · 작가, 일본어번역가. 돈과 일을 구함
2023/01/27
구글 같은 거대 IT 기업에서 면접을 볼 때 아주 독창적이고 흥미로운 질문을 던진다는 얘기가 사실인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유명하다. 예를 들자면 ‘맨홀 뚜껑이 왜 동그란지 답해보세요’ 같은 것들. 과연 그런 질문이 한 인간의 창의력이나 업무 수행 능력 따위를 가늠하는데에 도움이 되는지는 다소 의문이 있지만, 세상에서 제일 똑똑한 사람들이 모여서 짜낸 방법이니 무슨 효과가 있긴 있으리라. 아무튼 내가 이런 질문안 후보에 하나를 올릴 수 있다면 ‘라디오 방송을 예약해서 녹음하고 싶다면 어떤 방법을 쓰겠습니까?’ 라는 질문을 올리고 싶다. 경험해 보니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답을 쓰기 전에 이런 짓을 하게 된 이유부터 설명하자. 나는 지난 몇 년간 팟캐스트와 라디오 방송을 챙겨듣고 있다. 그중 하나는 국악방송 ‘최고은의 밤은 음악이야’의 코너 중 금요일 밤 10시에 시작되는 ‘친절한 재식씨’. 이것은 곽재식 작가가 게스트로 나와서 다양한 동물에 대해 알려주는 코너로, 듣다 보면 딱히 궁금하게 여겨본 적이 없는 동물들에 대해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는 재미가 상당하다. 다람쥐가 겨울잠을 길게는 10개월까지도 자는데, 사람들은 다람쥐가 먹이를 찾으러 다니는 짧은 기간만 보고 아주 부지런하다고 생각한다는 얘기 등을 듣자면 지적인 흥이 채워지는 것이다. 물론 먹고 사는 일에 별반 도움이 되지 않는 지식이긴 하지만, 바로 그렇기에 즐거운 방송이다. 산책하고 쉬는 시간까지 ‘생산성을 두 배로 올려주는 미라클 모닝’, ‘경기 침체 속에서 프리랜서로 살아남는 셀프 브랜딩’ 따위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이야기를 듣자면 만사가 다 지긋지긋해지지 않겠는가?

또 하나는 KBS1 라디오 주말 생방송 정보쇼의 코너 중 격주 토요일에 방송되는 ‘곽재식의 과학 플러스’다. 이 방송은 ‘친절한 재식 씨’보다는 약간 더 진지하고 깊이가 있으며, 로켓의 역사와 현재, 다누리호의 의미, 희토류 바나듐의 특징과 활용 등 다양한 주제를 적절한 깊이로 다뤄 교양을 쌓는 기분을 즐기기에는 더 알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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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미스터리를 주로 쓰고 IT기기와 취미에 대한 수필을 정기적으로 올립니다. 하드보일드 미스터리 소설 “심야마장-레드 다이아몬드 살인사건”으로 데뷔. SF호러 단편소설 ‘자애의 빛’으로 제2회 신체강탈자문학 공모전 우수상. 제10회 브런치북 출판공모전 특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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