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룩소에서 에세이 쓰는 사람들만 보기 [쉼]

홈은
홈은 · 15년차 집돌이
2023/03/27
일터를 비롯한 삶의 많은 부분에서 교차점이 없는 사람들이 쓴 열 편의 글은 ‘한국 사람이 쓴 글’이라는 유일한 공통점을 갖고 있다. 글을 읽으며 내 머릿속에 떠오른 표현은 ‘쉬지 못하는 한국인’이었다. 특히 중년 이후의 여성들의 글에서는 쉼에 관한 이야기보다는 쉴 수 없었던 상황에 대한 호소가 많아서 남성 임금의 60% 정도인 여성 임금에 관한 통계가 굉장한 무게감으로 다가왔다. 돌봄단순노무직에 종사하는 노년 여성들에 관한 통계도 입체적으로 느껴졌다. 한국은 비정규직 종사자도 여성이 많고 무급노동 종사자도 여성이 많다. 열 명이라는 작은 한국인 모집단에서도 눈에 띌 정도로 드러난다. 왜 그녀들은 쉼 없이 일해야만 했을까?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일했던 삶에서 분명 잠은 잤을 것이다. 소풍도 다녀왔을 것이고 철마다 쉼이라 일컬을만한 일들이 분명히 있었을 텐데 왜 온전한 쉼으로 인지하지 못하는 것인지 생각해 봤다. 내 의지에 따라 쉼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실직, 이사, 출산, 병 등 쉴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서야 쉼을 가장한 ‘일의 유예’가 가능했기 때문은 아닐까. 일을 해야 하는데 하지 못하고 유예시키는 상황에서는 잠을 자도 일에 대한 조급증을 내려놓기 어려울 것이다. 일 사이사이의 조각난 시간, 일을 할 수 없는 시간에 쉬는 것도 온전한 쉼으로 여기기에는 부족함이 있다.

오래전 유도를 배울 때 선생님이 제일 먼저 가르쳤던 것은 낙법이었다. 상대방을 제압하는 데 필요한 기본 기술이 아니라 다치지 않고 잘 떨어지는 법을 첫 시간에 가르친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학교는 일에 필요한 많은 것들을 가르친다. 하지만 일이 잘 되지 않았을 때, 일에서 성과를 내지 못했을 때, 삶에서 실패했다고 느낄 때 어떻게 다치지 않고 일어서는지에 대해서는 가르치지 않는다. 장애인, 약한 사람, 소수는 배제하고 낙오시키는 삶이 표준인 것처럼 인지하며 살아간다. 재능과 노력과 운이 합쳐져야 성공을 하는데 개인의 능력주의와 왜곡된 공정에 매몰된 사회는 인생에 쉼표를 칠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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