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소설이 아니라서

윤지슬
윤지슬 · 콘텐츠를 다루고 만듭니다
2023/06/10
 내 삶이 못 만든 블랙코미디 같을 때가 있다. 소설을 쓰다 보니 창작물의 장르나 결을 생각하곤 한다. 내 삶에도 장르가 있다면 시트콤이었으면 하는데, 아무래도 굳이 따지자면 블랙코미디인 듯하다. 자고로 코미디라면 그게 어떤 소재를 다루든 결국은 유쾌함을 주어야 한다. 씁쓸한 감상 뒤에든, 서늘한 감각 뒤에든 말이다. 그런데 간혹 ‘블랙’의 비율 조절이 삐끗해 관객을 웃지 못하게 하는 블랙코미디도 있는 법이다. 삶은 더 자주 그렇다. 아무리 고통스러운 일이라도 곰곰이 생각해보면 웃긴 구석이 하나씩은 있는데,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오면서도 이 순간에 정말 웃어도 되는지 스스로에게 묻게 되는 것이다. 말하자면 나는 가해자의 신상을 아무것도 암시하지 않은 글 때문에 성폭력 가해자의 가족에게 피해자인 내가 고소를 당한 일이 너무 웃기다! 하지만 내가 시트콤 작가라면 이런 에피소드는 넣지 않을 것이다.

 소설이든, 시트콤이든, 이야기엔 개연성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주인공이 아무리 바보 같은 짓을 하고 그에게 어떤 황당한 일이 생기더라도 정도가 있고 맥락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소설을 쓰고 난 후엔 툭툭 튀어나와 눈에 거슬리는 요소들을 제거한다. 문장을 삭제하고, 대사를 자연스럽게 고치고, 불행의 수위를 조절한다. 그러니까 소설에서 이런 것은 없애야 마땅한 실수다. 그런데 인생은 소설이 아니라서, 자꾸만 울퉁불퉁 돌멩이처럼 튀어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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