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 페스티벌 취소 논란: 우리가 다루는 문제가 어려운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기

노경호
노경호 · 연구자
2024/04/21
최근 일본AV 배우들을 섭외해서 여는 한 행사가 지자체의 금지 조치로 인해 결국 무산되었다. 나는 이런 사태가 총체적으로 우리가 자유주의란 무엇인지에 대한 이해가 거의 희박하고, 우리가 매순간 공적으로 결정해야 할 문제가 몇 마디 주장으로 관철시켜져야 하는 단순한 문제라고 착각하고 있기 때문에 일어났다고 생각한다. 내가 아래 적은 단상들은 다소 금지의 반대 쪽의 의견을 지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행사 금지가 부당하다는 주장이 이론의 여지 없이 옳다고 증명하려 한 것은 아니다. 다만 적어도 이 행사를 금지할지 말지의 문제가 아주 논의하기 까다롭고 어려운 문제라는 인식이, 시민들이 이런 류의 문제를 대하는 기본적인 태도여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첫째, 기독교인의 입장에서는 이런 식의 행사를 반대해도 된다. 그런데 자유주의 사회에서 그 주장이 동의를 얻으려면, 그러한 주장이 기독교에서 가르치는 교리 이외의 근거들에 의해서도 정당화될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서 “x를 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신의 가르침에 어긋나기 때문이다.”라고 한 종교인이 주장할 때, 그 신을 믿지 않거나 그 종교를 가지지 않은 사람은 단지 그 사실만으로 그의 주장을 배척할 수 있다. 그 종교인이 어떤 믿음에 따라 어떤 주장을 하는 것은 그의 (사적인) 자유이지만, 다른 동료 시민들이 그것을 따라줄 것이라 기대해서는 안 된다. 그는 동료 시민들까지도 받아들일 법한, 다른 이유들을 들어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해야 한다. 이런 이야기는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라 이미 오래 전 존 롤스가 쓴 『정치적 자유주의』의 내용이다. 동성결혼 합법화, 차별금지법과 관련해서 기독교인들이 내는 메시지가 아직도 이런 형식을 띈다는 것이 자유주의 국가에서 가능한 일인지 놀랍다.

둘째, 천하람 씨의 찬성 입장에는 전체로서는 아니지만 몇몇 지점에 있어서는 동의하기 어렵다. 성욕 내지 성욕으로 인한 혹은 성욕을 채우기 위한 행동이 본능적인 것인지는 좀 더 어려운 문제이므로 제쳐두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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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고대철학과 정치철학을 공부합니다; 번역: <정치철학사>(공역, 도서출판길, 2021), <자유주의 이전의 민주주의>(후마니타스, 2023); 신문 <뉴스토마토> 시론 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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