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득한 글자들의 왁자지껄 산수화_작가 유승호

봄드롱 · 따뜻한 예술이야기를 함께 나눠요.
2023/09/22
작가_유승호


우수수수수수수…. 바람이 불고 낙엽들이 수없이 흩날려 점점이 흩어진다. 세계가 눈앞에서 점묘화를 그리는 순간.
가슴 울리는 장면을 접할 때 우리는 그 순간을 표현할 적당한 형용사들을 떠올린다. 유승호 작가의 작품은 바로 그 순간을 점묘화로 표현한 작품이다.
그는 작은 글씨를 계속 써나가며 그림을 그린다. 이런 작품을 그리는 작가는 어떤 남자일까? 그가 좋아하는 소설책은 뭘까? 작품을 보다보니 사람이 궁금해졌다.
그리하여 먼지가 폴폴폴 날리는 국도를 구불구불 열심히 달려 그가 있는 경기도 장흥으로 간다.
작품을 보면 그는 아마도 낄낄 웃을 줄 아는 남자일 것이다. 그러나 적막과 적막 사이에 고요히 존재할 줄 알고 외로움에 눈물 흘릴 줄 아는 남자일 것 같다. 그림 속 수다와는 반대로 만나면 말수가 적은 남자일지도 모른다. 뼈마디가 두드러지는 예민한 손가락을 가진…. 멋대로 상상의 나래를 펴며 한참을 가다보니 어느덧 목적지인 가나아트센터 레지던스에 도착했다.

장마가 잠깐 소강상태에 접어든 여름. 점심나절이다. 그동안의 축축함을 보상이라도 하듯 쨍쨍하게 내리쬐는 햇빛 아래 검은 상자형 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작업실들은 왜 하나같이 이렇게 서늘하고 추운건지 절로 어깨가 움츠려든다. 복도에 이르니 특유의 물감 냄새가 콧속으로 훅 밀려든다.

507호의 문을 열었다. 인사 대신 변기에 물 내리는 소리가 크게 맞이한다. 동시에 그가 쓰레받기를 들고 화장실에서 나오다 마주쳤다.

“산 앞이라 벌레가 많아서요.” 멋쩍은 듯 말하는 작가를 보니 웃음이 난다. 어쩐지 상상했던 그대로여서. 작업실 문 안쪽 윗벽에는 ‘유승호’라고 쓰인 문패가 달려있다. ‘유’라는 글씨는 흐늘흐늘 팔다리를 늘어뜨린 사람모양으로 ‘유순한, 흐르는 듯한, 유연한’ 등의 연상작용과 합쳐져 영락없이 작가를 연상시킨다.

10년 전 유승호의 작품을 보며 생각했다. 그는 말맛을 아는 사람이구나. 연습장에 ‘꾸룩꾸룩’이라고 계속 쓰면 정말 글자가 꾸룩꾸룩거리는 것 같은 재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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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칼럼니스트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졸업_ 아트프로젝트 <봄봄의 그림이야기>_ 현대카드 브랜드실, SK텔레콤 카피라이터 근무_ 매일경제, 중앙일보, 등에서 아트칼럼 연재_ 현)일러스트레이터 및 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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