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의 지중해 ⑨> “당신이 여태 사랑을 해본 적 없다니 그분이 비웃겠어요!”

정숭호
정숭호 인증된 계정 · 젊어서는 기자, 지금은 퇴직 기자
2023/10/31
 영국 화가 터너(William Turner, 1775~1851)의 ‘헤로와 레안드로’는 지난 6월 2일 시작해 10월 9일 막을 내린 ‘영국 내셔널 갤러리 명화전’(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제가 나름 눈 여겨 감상한 그림입니다. 라파엘로, 카라바조, 렘브란트, 마네, 고흐, 르노아르의 명작이 즐비했던 이 전시회에서 터너의 그림을 앞으로 가서 보고 뒤로 가서 보고, 옆에서도 보았던 건 그림의 소재인 ‘헤로와 레안드로의 뜨거운 사랑과 비극적 죽음’을 좀 알았기 때문입니다. 또 낭만의 시인, 바이런이 이 두 청춘의 사랑과 비극을 시에 담았을 뿐 아니라 흉내낸 것도 알았기 때문입니다.
   
#‘헤로(Hero)’는 사랑과 성(性)의 여신인 아프로디테(비너스)를 모시는 아름다운 여사제였습니다. 잘 생긴 젊은이 ‘레안드로스(Leandros, 영미에서는 줄여서 레안드로Leandro로 표기합니다)’는 헤로에게 반해 부드럽고 따뜻한 목소리로 사랑을 주저하는 헤로를 유혹합니다. “당신이 모시는 아프로디테 여신은 사랑의 여신입니다. 당신이 여태 사랑을 해본 적 없는 처녀인 걸 알면 그분이 비웃지 않을까요?” 레안드로스의 목소리와 ‘논리’에 헤로는 맥없이 설복당합니다. 
   
문제는 둘 사이를 아시아와 유럽을 가르는 ‘헬레스폰투스 해협’이 가로막고 있다는 것. 헤로는 해협 서쪽(유럽쪽) ‘세스토스’ 언덕 위 아프로디테 탑에서 살고, 레안드로스는 해협 동쪽(터키쪽)인 ‘아비도스’에 삽니다. 오늘날 ‘다르다넬스 해협’이라고 불리는 헬레스폰투스 해협은 지중해와 터키의 내해라고 할 수 있는 마르마라 해를 연결합니다. 배를 타고 지중해 동쪽 에게 해에서 터키 이스탄불로 가려면 반드시 거쳐야 합니다. 길이는 61㎞, 넓은 곳은 폭이 6㎞이나 좁은 곳은 1.2㎞ 정도입니다. 폭이 좁은 곳은 그만큼 물살이 급하겠지요. 
   
사랑을 허락받은 레안드로스는 매일 밤 헤엄쳐 헤로에게 갑니다. 새벽이면 다시 건너오고요. 헤로는 레안드로스가 캄캄한 밤, 바다 한가운데에서 길을 잃지 말라고 탑에 등불을 걸어놓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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