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1/18
몇 시간 전 이 글을 보고 덧글을 쓸까 말까 생각했습니다. 통합진보당 해산의 주축이 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지만, 이 인터뷰에서 드러난 하태경 의원님의 젠더 인식부터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남성은 젠더 간의 사회적 불평등을 시정해 달라는 것이고 여성들은 여성 보호를 더 강화해 달라는 거죠.
여성들은 보호를 원하지 않습니다. 보호받지 않아도 평등해서 안전한 세상을 원합니다.
'보호'가 키워드가 되면 결국 남자들이 여자들을 보호해주게 됩니다. 경찰력, 공권력,CCTV, 감시, 처벌 이런 것들이 강화되는 결론입니다. 하지만 여성들이 원하는 것은 '약한'여자를 '보호'해주는 '남자'들이 아니라 남성 일반이 여성 일반을 자신들과 동등한 위치에서 바라보고 대우하기 때문에 비로소 안전한 세상을 원하는 겁니다. 최근 몇 년간 여성들은 '보호'에 대한 이야기를 한 것이 아닙니다. 보호받고 싶었다면 오빠나 아빠한테 집에 데려다 달라고 했겠지요. 하지만 여성들은 국회의원 ...
성범죄로부터 여성을 보호해야 한다는 말이나, 성범죄로부터 여성을 안전하게 해야 한다나 같은 말 아닌가요? 이 글의 요점은 뭔가요? 어떤 부분이 어떻게 다르다는 건지?
‘보호‘는 그러니 여성이 옷차림을 조심해야 하고, 밤에 함부로 돌아다니면 안 되고라는 식으로 왜곡된 문법을 제시할 수도 있다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권위있는 집단에 속한 사람들이 이런 사고방식을 가지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해요. 어린 아이들을 시청연령제한이나 유아차나 포대기등으로 보호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문제잖아요.
남녀 구분없이 성범죄는 나쁜 일입니다. 성범죄를 당하는 사람들이 책임과 고통을 떠안아야 하기 때문에 불특정 다수의 잠정적 피해자들이 알아서 조심해야 하는 방향은 많은 피해를 양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범죄 발생률을 낮추기 위해 법을 시행하고 사회의 인식을 바꾸고 시설물을 점검하는 등의 노력으로 성범죄 가해자들이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을 줄이는 방향은 모두에게 이롭습니다.
여성의 성범죄 피해율이 높아서 여성의 일로 국한하여 생각하기 쉽지만 성범죄는 사람 대 사람의 일로 생각해야 합니다. 성범죄 피해를 당하는 소수의 남성에게도 큰 상처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보호’가 아닌 ‘보편화 된 안전’에 무게가 실려야 하는 이유입니다.
사적인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페미니즘을 방패로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고, 페미니즘도 단일하지 않습니다. 학문 초기에는 이론이 많지 않고 시야가 좁기 때문에 가장 강렬한 목소리가 학문의 전체인 것처럼 보여지기도 합니다. 인류의 절반인 여성에 대해 더 많은 학자들과 사람들이 이야기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봅니다. 다양한 목소리가 들려야 다양한 사람들을 생각할 수 있으니까요.
페미니즘은 여성만의 일도 아니고 여성만을 위한 개념도 아닙니다. 일부 페미니즘에 대한 불만이나 증오가 ‘구속을 통한 보호‘를 긍정하는 방향으로 흐른다면 피해자 집단에는 여성이 있겠지만 남성도 포함되어 있을 것입니다. 연대는 집단이기주의와 같은 말이 아닙니다. 투쟁은 다른 성별을 이기기 위한 것이 아닌 공존을 위한 것입니다.
성범죄나 페미니즘에 대해 배운 적도 없는 것도 없고 아는 것도 없기 때문에 지식보다는 상식을 기준으로 생각합니다. ‘차별없고 안전한 세상’을 중심에 두고 생각하면 결론은 하나입니다. 안전과 보호는 같은 말이 될 수 없어요. 어떻게 보호하느냐에 따라 더 위험한 상황이 만들어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로봇이 인간을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 인간을 집에 가두기 시작했다는 유명한 작품 속 예시가 마냥 예시에만 그치지 않을 수도 있겠죠.
저는 성범죄 문제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 것이 아니라 성범죄를 '보호'와 연결시키는 것이 잘못되었다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여성들이 원하는 것이 '성범죄로부터의 보호'가 아니라 평등 사회를 통한 안전이라는 것입니다. 피해를 고발하고 연대하는 것으로 많은 사람들이 결집해왔지만 그 목소리는 '보호'해 달라는 것과 연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글쎄요... 성범죄 문제에 대해 가장 열올리는 쪽이 어디였던가요.
신께서 여성들에게 경력단절과 성범죄 문제 중 하나만을 해결해주겠다고 하면 무엇을 바라는 사럼이 더 많을까요.
2010년대 중반이후 여성운동의 원동력은 확실히 여성의 피해자성을 강조하여 결속을 다지고, 또 연대하고 투쟁하는 것으로써 이를 이겨낼 수 있다고 부르짖은 것에 있지 않던가요?
여성은 보호를 바라지 않는다 라...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연재를 시작한 20대 대선 선거 이슈 시리즈의 토대가 되는 게 제 석사 논문인데, 여성가족부 폐지 이슈가 윤석열 투표에 영향을 어떻게 얼마나 미쳤는가가 연구 주제입니다.
정책학이나 정치학에서는 성차별주의를 온정적 성차별주의와 적대적 성차별주의로 구분하는데, 말씀하신 부분은 온정적 성차별주의 - 여성은 보호받아야 한다 쪽의 서술을 해 주신 것으로 보이고, 선행연구에서는 온정적 성차별주의 태도는 기존 성 고정 관념을 답습하기 때문에 여성 할당제는 오히려 반대하는 것으로 나오죠(그래서 여성 할당제 찬성 -> 온정적 성차별주의가 높거나, 적대적 성차별주의가 낮음 -> 여성가족부 폐지 반대 로 결론이 나왔던).
답글로 적어주신 대부분의 내용에 동의하는데, 저는 페미니즘에 대한 프레임 차이가 여러 집단 사이에서 상당히 이질적인 상황이 반영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페미니즘은 여타 이념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스팩트럼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고, 제가 판단한 바로는 레디컬 페미니스트와 여성우월주의자 내에는 교집합이 있는데, 커뮤니티의 남성들 반응을 보면 페미니즘 = 여성우월주의 와 같이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페미니스트가 아니라고 하면서 페미니즘이 주장하는 바를 주장하는 사람을 개념 있다고 보는 역설적인 상황이 프레임 차이 때문에 나타납니다.
좋아요 왜 한번만 누를 수 있는거죠. 완전 동감입니다.
여가부가 여성을 위한 부처로 오인하게 만든 것도 정말 너무 짜증나지만 일단 말을 줄이겠습니다.
저는 성범죄 문제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 것이 아니라 성범죄를 '보호'와 연결시키는 것이 잘못되었다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여성들이 원하는 것이 '성범죄로부터의 보호'가 아니라 평등 사회를 통한 안전이라는 것입니다. 피해를 고발하고 연대하는 것으로 많은 사람들이 결집해왔지만 그 목소리는 '보호'해 달라는 것과 연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보호‘는 그러니 여성이 옷차림을 조심해야 하고, 밤에 함부로 돌아다니면 안 되고라는 식으로 왜곡된 문법을 제시할 수도 있다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권위있는 집단에 속한 사람들이 이런 사고방식을 가지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해요. 어린 아이들을 시청연령제한이나 유아차나 포대기등으로 보호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문제잖아요.
남녀 구분없이 성범죄는 나쁜 일입니다. 성범죄를 당하는 사람들이 책임과 고통을 떠안아야 하기 때문에 불특정 다수의 잠정적 피해자들이 알아서 조심해야 하는 방향은 많은 피해를 양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범죄 발생률을 낮추기 위해 법을 시행하고 사회의 인식을 바꾸고 시설물을 점검하는 등의 노력으로 성범죄 가해자들이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을 줄이는 방향은 모두에게 이롭습니다.
여성의 성범죄 피해율이 높아서 여성의 일로 국한하여 생각하기 쉽지만 성범죄는 사람 대 사람의 일로 생각해야 합니다. 성범죄 피해를 당하는 소수의 남성에게도 큰 상처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보호’가 아닌 ‘보편화 된 안전’에 무게가 실려야 하는 이유입니다.
사적인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페미니즘을 방패로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고, 페미니즘도 단일하지 않습니다. 학문 초기에는 이론이 많지 않고 시야가 좁기 때문에 가장 강렬한 목소리가 학문의 전체인 것처럼 보여지기도 합니다. 인류의 절반인 여성에 대해 더 많은 학자들과 사람들이 이야기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봅니다. 다양한 목소리가 들려야 다양한 사람들을 생각할 수 있으니까요.
페미니즘은 여성만의 일도 아니고 여성만을 위한 개념도 아닙니다. 일부 페미니즘에 대한 불만이나 증오가 ‘구속을 통한 보호‘를 긍정하는 방향으로 흐른다면 피해자 집단에는 여성이 있겠지만 남성도 포함되어 있을 것입니다. 연대는 집단이기주의와 같은 말이 아닙니다. 투쟁은 다른 성별을 이기기 위한 것이 아닌 공존을 위한 것입니다.
성범죄나 페미니즘에 대해 배운 적도 없는 것도 없고 아는 것도 없기 때문에 지식보다는 상식을 기준으로 생각합니다. ‘차별없고 안전한 세상’을 중심에 두고 생각하면 결론은 하나입니다. 안전과 보호는 같은 말이 될 수 없어요. 어떻게 보호하느냐에 따라 더 위험한 상황이 만들어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로봇이 인간을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 인간을 집에 가두기 시작했다는 유명한 작품 속 예시가 마냥 예시에만 그치지 않을 수도 있겠죠.
글쎄요... 성범죄 문제에 대해 가장 열올리는 쪽이 어디였던가요.
신께서 여성들에게 경력단절과 성범죄 문제 중 하나만을 해결해주겠다고 하면 무엇을 바라는 사럼이 더 많을까요.
2010년대 중반이후 여성운동의 원동력은 확실히 여성의 피해자성을 강조하여 결속을 다지고, 또 연대하고 투쟁하는 것으로써 이를 이겨낼 수 있다고 부르짖은 것에 있지 않던가요?
여성은 보호를 바라지 않는다 라...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연재를 시작한 20대 대선 선거 이슈 시리즈의 토대가 되는 게 제 석사 논문인데, 여성가족부 폐지 이슈가 윤석열 투표에 영향을 어떻게 얼마나 미쳤는가가 연구 주제입니다.
정책학이나 정치학에서는 성차별주의를 온정적 성차별주의와 적대적 성차별주의로 구분하는데, 말씀하신 부분은 온정적 성차별주의 - 여성은 보호받아야 한다 쪽의 서술을 해 주신 것으로 보이고, 선행연구에서는 온정적 성차별주의 태도는 기존 성 고정 관념을 답습하기 때문에 여성 할당제는 오히려 반대하는 것으로 나오죠(그래서 여성 할당제 찬성 -> 온정적 성차별주의가 높거나, 적대적 성차별주의가 낮음 -> 여성가족부 폐지 반대 로 결론이 나왔던).
답글로 적어주신 대부분의 내용에 동의하는데, 저는 페미니즘에 대한 프레임 차이가 여러 집단 사이에서 상당히 이질적인 상황이 반영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페미니즘은 여타 이념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스팩트럼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고, 제가 판단한 바로는 레디컬 페미니스트와 여성우월주의자 내에는 교집합이 있는데, 커뮤니티의 남성들 반응을 보면 페미니즘 = 여성우월주의 와 같이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페미니스트가 아니라고 하면서 페미니즘이 주장하는 바를 주장하는 사람을 개념 있다고 보는 역설적인 상황이 프레임 차이 때문에 나타납니다.
좋아요 왜 한번만 누를 수 있는거죠. 완전 동감입니다.
여가부가 여성을 위한 부처로 오인하게 만든 것도 정말 너무 짜증나지만 일단 말을 줄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