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수능 시험을 보게 될 너에게

이재랑
이재랑 · 살다보니 어쩌다 대변인
2021/11/17

 우린 망했다. 네가 허투루 읽을까봐 분명히 말하자면 1) 우리는 2) 망했다. '우리'라고 묶인 것이 불쾌할지 모르겠다. 내 나이가 서른이다. 너는 열아홉이겠지. 너에게 까마득하게 보일 내 나이가 되면 어떻게 되는지 미리 알려주랴. 정말 놀랍게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서른이 되는 날, 깨달았다. 나는 잉어킹이라는 것을. 너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임을 나는 안다.    

 나는 아직도 10대를 팔며 서른을 산다. 내가 열아홉엔 뭐 했냐면, 운운. 다행인 건 그 짓거리를 하는 게 나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공신'이라는 작자는 아직도 제 대학 이름을 팔아 지금껏 연명하더구나. 요근래 페이스북을 보니 20대의 추억을 팔아 살아가는 4, 50대 어른들 역시 많더라. 나는 너무 반가워서 하마터면 '저도 낄래요!'라고 소리지를 뻔 했다.

 과거를 추억하며 현재를 근근히 버티는 건 노소의 문제가 아닌가보다. 네가 그랬었지. "중딩 때 공부 좀 열심히 할 걸." 수능 치고나면 고딩 때를 후회할 것이고, 서른이 되면 20대를 마흔이 되면 30대를 후회할 것이다. 모두가 그런 것이니 괘념치 마라. 역사적으로는 '르네상스'라는 것도 있었단다.

 그러니 명백하게 망했다. 아니 씨발 아직 시험은 치지도 않았는데 왜 저주부터 하세요, 라고 말하면 사실 할 말은 없다. 들킨 김에 말하자면 나는 네가 처절하게 망했으면 좋겠다.

 잘 생각을 해보렴. 네가 좋은 성적을 받는다는 것은 누군가 좋은 성적을 못 받는다는 얘기다. 그게 뭐 네가 잘 나서 그런 거겠니? 상대평가라는 게 그런 거다. 뽀록도 실력임을 가르쳐주는 것이 수능의 교훈이다. 

 과연 네가, 다른 사람의 기회를 빼앗아 대학을 가는 게 좋은 일일까? 네가 대학을 가는 것이 그 정도의 가치가 있는 일일까? 만약에 운수가 대통하여 네가 높은 수능 성적을 받아 대학에 갔다고 치자. 그러면 또 얼마나 제 잘난 맛에 살겠냐. 그 꼬락서리를 볼 생각하니 벌써부터 소름이 돋는다. 

 네가 탐내는 대학 타이틀이라는 게 정말 오롯이 너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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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정의당/청년정의당 대변인 (~2022) 10년 차 사교육 자영업자. 작가가 되고 싶었고, 읽고 쓰며 돈을 벌고 싶었고, 그리하여 결국 사교육업자가 되고 말았다. 주로 학생들의 한국어 능력과 시험성적을 꾸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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