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범 · 머지 않아, 곧 영화.
2023/12/09
혼자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엉킨 이어폰을 꺼냈다. 잔뜩 꼬여서 풀지 못했다. 이렇게 하고 다니니까 맨날 엉키지. 너의 말이 문득 떠올랐다. 결국 엉킨 이어폰을 풀지 못했다. 짜증 나고 분했다. 그리고 네가 그리워서 울었다. 하염없이 울었다.
세미는 하루 앞두고 다리를 다쳐 수학여행을 못 가는 하은이가 밉다. 둘이 같이 수학여행에서 행복한 추억을 쌓고 싶었지만, 그것이 무산되어 세미는 속상한 마음을 숨길 수가 없다. 세미는 하은이가 수학여행에 갈 수 있게 캠코더를 팔자고 설득한다. 그런 세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하은이는 느긋하다. 세미는 무언가를 자꾸 숨기는 듯한 하은이가 의심스럽고, 하은이는 자꾸 떼를 쓰는 세미가 좋으면서도 철없게 느껴진다. 마음이 앞선 세미는 자꾸 말이 헛나가고 그들의 사이에 오해와 상처가 생긴다. 그렇게 자꾸 어긋난 그들 뒤로 '안산역'이 있다.

영화 <너와 나>는 조금의 정보만 알고 있다면 결말을 예상할 수 있다. 설령 아무것도 모르더라도 영화 중반부에 이르면 결말을 대충 어림짐작할 수 있다. 그렇기에 더욱 슬프다. 알고 있어도 사무치도록 슬픈 감정이 영화관을 덮친다. 단순히 한 사회의 비극 때문이 아니다. 우리는 인물들의 마음 끝에서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알고 있다.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 무력감에 젖는다. 그토록 화사한 화면이 슬프게 느껴지는 이유다.
출처 : 다음 영화
마음이 투영된 꿈속의 공간
조현철 감독은 "꿈속에서라도 친구들을 보고 싶다"라는 단원고 학생의 말에 영감을 받아 영화의 화면을 구상했다고 말했다. 영화 <너와 나>의 장면은 조도가 높다. 빛을 최대로 받은 듯한 화면은 공간을 비현실적으로 만든다. 영화의 공간은 거울처럼 인물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비춘다. 영화 중간마다 틈입하는 두 아이들, 멈춘 시계, 노래방 모니터에서 비친 뮤직비디오는 세미의 상상을 투영한다. 시간마저 균질하게 흐르지 않는다. 마치 시간을...
얼룩패스
지금 가입하고
얼룩소의 모든 글을 만나보세요.
이미 회원이신가요? 로그인
어렸을 때 주말이 되면 DVD 대여점에 달려가 영화를 하나씩 빌려왔습니다. 그리고 가족끼리 도란도란 앉아 영화를 보곤 했습니다. 그때부터 영화는 제 삶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영화를 보며 어떻게 마음을 묘사할까 골몰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1
팔로워 0
팔로잉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