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수아비의 장르>

천세진
천세진 인증된 계정 · 문화비평가, 시인
2023/08/05
출처-픽사베이
<허수아비의 장르> - 천세진

 나는 독립된 장르라네. 술에 취한 척 슬그머니 들어온 손이 주무를 것이라곤 눅진하고 곰팡내 나는 공기가 전부여서 세상의 체위들로는 내 사랑의 양식을 증명할 수 없네.

 공중부양을 배웠다는 이들이 내 외다리 양식을 표절했다고 들었지만 내버려두려네. 나야말로 표절로 탄생했으니, 표절을 표절한 것은 원본으로 돌아간 것이네.

 침묵에 대해서도 깊은 오해가 있네. 나는 침묵하지 않았네. 유예된 수다였고, 말을 표절하는 중이었네. 바람의 말을, 빗방울의, 천둥의, 까마귀 부리의, 자전거 바퀴살의 말을 표절하는 중이었네.

 허수아비의 시대는 갔네. 새들과 속고 속이기로 계약을 맺었던 낭만주의...
천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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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순간의 젤리>(2017 세종도서 문학나눔 선정), <풍경도둑>(2020 아르코 문학나눔도서 선정), 장편소설<이야기꾼 미로>, 문화비평서<어제를 표절했다-스타일 탄생의 비밀>, 광주가톨릭평화방송 <천세진 시인의 인문학 산책>, 일간지 칼럼 필진(2006∼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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