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주회 감상의 기쁨

이건해
이건해 · 작가, 일본어번역가. 돈과 일을 구함
2023/03/17
나는 음악회에 갈 일이 잘 생기지 않는 편이다. 연주자들이 모여 실제로 눈앞에서 연주하는 음악회의 특성상 티켓이 비싼 것도 이유고, 공연장이 가벼운 마음으로 갔다올 만큼 가깝지도 않다는 것도 이유인데, 주변에 음악회를 같이 자주 즐길 사람도 없는 데다가 나 자신도 음악회 관람에 그렇게까지 만족한 기억이 없다는 게 무엇보다 결정적이다. 만약 너무 좋다고 감탄한 적이 있으면 다른 지출을 줄여서라도 종종 갔으리라. 하지만 보드게임을 사면 몇 년 내내 즐겁게 갖고 놀 수 있을 돈을 만족할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경험 한 번에 쏟아붓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런 연유로 쳇바퀴같이 비슷한 오락 문화를 반복하던 와중에 후배 한 명이 집에만 있다가 정신이 나갈 것 같다며 ‘블록버스터 영화 음악 콘서트’라는 음악회를 찾아서 같이 갈 사람들을 모으기에 보니, 유명한 영화의 사운드트랙을 연주하는 음악회였다. 나는 반지의 제왕이나 해리 포터를 비롯해서 익숙한 곡이 많기에 큰맘먹고 가기로 했다. 해리 포터와 반지의 제왕 사운드 트랙을 직접 들을 수 있다니, 그건 4만원을 내고 코로나의 공포를 무릅쓰며 갈 가치가 있는 공연이 분명했다.

그리하여 어제는 수백 년만에 블레이저까지 꺼내 입고 예술의 전당으로 향했는데, 마침 보드게임 중고 거래가 성사되어 택배를 부치느라 시간을 소모했더니 가는 길 내내 뛰면서 불안감에 떨어야 했다. 음악회는 늦으면 안 들여보내는데, 떼쓰다가 구정물을 맞고 엉덩이를 걷어차여 쫓겨나면 어쩌지? 택배는 나중에 부칠걸. 늦어도 별 문제 없는 약속만 하다 보니 이 꼴이 되었구나…… 하는 식이었다. 아무튼 뛴 보람이 있게도 제시간에 간신히 예술의 전당에 도착해서 일단 숨을 돌리긴 했다. 그런데 이게 웬 걸, 공연을 하는 음악당은 또 입구에서 또 수백만 킬로는 떨어져 있어서 그야말로 피말리는 심정으로 달려간 끝에야 무사히 입장할 수 있었다. 넓고 복잡하며 표지가 별로 없는 예술의 전당 구조에 저주 있으리.

간신히 찾은 우리 자리는 제일 저렴한 4만원짜리 합창석으...
얼룩패스
지금 가입하고
얼룩소의 모든 글을 만나보세요.
이미 회원이신가요? 로그인
SF, 미스터리를 주로 쓰고 IT기기와 취미에 대한 수필을 정기적으로 올립니다. 하드보일드 미스터리 소설 “심야마장-레드 다이아몬드 살인사건”으로 데뷔. SF호러 단편소설 ‘자애의 빛’으로 제2회 신체강탈자문학 공모전 우수상. 제10회 브런치북 출판공모전 특별상.
135
팔로워 23
팔로잉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