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포리행

박선욱 · 시, 동화, 소설 및 평전을 씁니다.
2023/02/25
외포리행
   
   
박 선 욱
   

얼마 전에 외포리엘 다녀왔다. 소설 쓰는 K선배, 출판사를 운영하는 L선배, 학원을 운영하는 Y선배와 함께였다. 합정동에서 출발한 차가 자유로를 벗어나 김포대교 위로 접어들 무렵, 하오의 해가 한강 하구의 수면 위에 강렬한 빛을 뿌리고 있었다.
초지대교로 이어지는 제방도로 오른쪽으로는 한강이 유유히 흐르고 있었고, 강 건너편엔 일산 신도시의 아파트와 빌딩들이 보였다. 수면 위로 번들거리는 햇살, 둔치 위로 높다랗게 치솟아 흔들거리는 갈대들이 만추의 서정을 자아내고 있었다.
우리 일행이 외포리의 갯마을 횟집에 당도할 때쯤엔 일몰의 장관이 연출되고 있었다. 포구 건너 삼산면의 산등성이에 떨어지기 시작한 해가 붉게 타올랐고, 정박된 몇 척의 배와 해수면 위에 무수한 해의 비늘들이 잘게 부서지며 빛났다.
L선배는 이날의 호스트답게 횟집에 자리를 잡자마자 놀래미회와 소주를 시켰다. 기본안주는 푸짐했고 식당 아줌마의 인심도 후해서 만찬 자리가 그렇게 넉넉하고 푸근할 수가 없었다.
“우리 인생도 저 잔물결 한 조각과 같은 거야. 멀리서 보면 높지도 않고 크지도 않지. 그저 고만고만한 모양으로 서로 섞이고 넘나들며 한 물결을 이루는 거지. 그러니 잘난 척할 필요도 없고 아등바등 경쟁할 필요가 없는 거야. 안 그래, K형?”
“아프고 나더니, 득도했군 그래. 하하하.”
L선배의 선문답에 이어 K선배 역시 도인풍으로 되받아치며 술잔을 들었다. 나는 술 대신 물잔을 들었다.
“이거, 여태까지는 K형이 항상 우리를 향해 일장 훈시를 했는데, 오늘은 L형이 한소식 한 게 틀림없군.”
Y선배가 잔을 들이키려다 말고 감탄사를 연발하자 L선배와 K선배가 마주 보며 웃었다. 그들의 얼굴에 노을이 얼비쳐 발그레했다.
L선배는 강원도 간성에 위치한 한 포병부대의 고참 병사였고, K선배는 유신 말기에 학생운동을 하다 감옥살이를 한 뒤 강제 징집 당하여 포병부대에 들어간 이등병이었다. Y선배 역시 마찬가지 케이스로 군에 들어왔다. 계급장으로만 따진다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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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실천문학》 으로 등단. 시집 《회색빛 베어지다》 《눈물의 깊이》 《풍찬노숙》, 인물이야기 《윤이상》 《김득신》 《백석》 《백동수》 《황병기》 《나는 윤이상이다》 《나는 강감찬이다》 등. 《윤이상 평전: 거장의 귀환》으로 제3회 롯데출판문화대상 본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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