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처럼 보이는 사물의 밀물

천세진
천세진 인증된 계정 · 문화비평가, 시인
2023/09/07
    책을 바라볼 때마다 이제 더는 ‘지식’이란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선택’이란 단어가 먼저 떠오른다. ‘선택’을 떠올려 놓고 드는 심정은 복잡하고 어둡다. 어쩌면 2년마다 찾아오는 각종 선거 때마다 드는 심정과 비슷할지도 모른다. 어떻게 해도 최선의 선택은 아니리라는, 과장되고 치장된 정보들이 결국 우리를 속이리라는 불안감이 너무 닮았다. 

    20세기 이후의 인류는 선택의 시대에 산다. 그 이전의 세기들에도 선택은 존재했지만 그 폭과 깊이는 몹시 좁고 얕았다. 개울과 거대한 강의 차이다. 이전 세기에는 계층, 계급, 직업을 의지대로 선택할 수 없었고, 거주 공간을 바꾸기도 어려웠다. 선택은 거의 언제나 혁명이나 반역을 의미했다. 시대와 지역을 막론하고 정도의 차이가 있었을 뿐 거의 모든 인류 사회가 그런 모습이었다.
사진 출처-픽사베이
    사회를 구성하는 거의 모든 문화적, 문명적 요소들과 의미들 또한 당연히 딱딱한 고체 속에 들어있었다. 『열린사회와 그 적들』(1945) 속에 들어있는 칼 포퍼(1902∼1994)의 견해를 빌리면 19세기까지의 사회는 ‘닫힌 사회’였고, 고체와 같은 사회였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을 비롯한 이후의 혁명들―군부 쿠데타는 제외하고―이 깨뜨리려고 한 것이 바로 그 닫힘과 딱딱함이었을 것이다. 

    근대성이 딱딱한 고체성에 있지 않고 유동적인 액체성에 있음에 주목한 지그문트 바우만(1925∼2017)은 『액체 근대』(2000)에서 이렇게 썼다.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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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순간의 젤리>(2017 세종도서 문학나눔 선정), <풍경도둑>(2020 아르코 문학나눔도서 선정), 장편소설<이야기꾼 미로>, 문화비평서<어제를 표절했다-스타일 탄생의 비밀>, 광주가톨릭평화방송 <천세진 시인의 인문학 산책>, 일간지 칼럼 필진(2006∼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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