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민주구국선언-유신반대운동의 불꽃

박선욱 · 시, 동화, 소설 및 평전을 씁니다.
2023/04/19
3·1민주구국선언-유신반대운동의 불꽃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아카이브 원고)
   
   
   
글 박선욱
   
   
1. 긴급조치 9호를 깬 민권운동의 탄생 배경
   
1976년 2월 12일, 문익환 목사는 사상가이자 민권운동가인 함석헌과 머리를 맞대고 무언가를 의논하고 있었다.
“함석헌 선생님, 제가 유신 반대에 관한 ‘민주구국선언문’을 작성했습니다. 오는 3월 1일을 기해 이 선언서를 발표할 생각입니다. 선생님도 제 생각과 같으신지요?”
“그럼요. 문 목사님 뜻에 기꺼이 동참하겠소.”
함석헌의 뜻을 확인한 문익환은 동생인 문동환 목사와 이문영, 윤보선, 서남동 등을 차례로 만났다. 그들 모두가 선언문 발표에 대해 동의하며 서명을 약속했다. 윤보선은 선언문에서 유신헌법 철폐와 긴급조치 해제, 현 정권 퇴진에 관한 내용을 뚜렷하게 명시해달라고 요구했다. 이문영 교수는 선언문의 초안을 수정해주었다.
문익환은 그 무렵 독자적인 선언문을 준비하고 있던 김대중도 만났다. 문익환의 선언문을 본 김대중은 자신의 선언문을 선뜻 포기하며 서명에 동참했다. 문익환은 2월 27일 신현봉 신부에게 선언문을 전달했고, 28일에는 함세웅 신부를 만났다.
“신부님, 삼일절 기념미사에서 이 선언문을 발표할 수 있겠습니까?”
명동성당에서 발표가 가능한지 의사 타진을 하는 문익환의 얼굴은 무척 진지했다. 함 신부는 선언문 발표를 쾌히 응낙했다.
유신체제는 박정희 대통령 한 사람을 위한 만인의 불행이었다. 1975년 5월에 긴급조치 9호가 선포된 뒤부터 감시와 미행이 일상화되었다. 순서지에는 선언문 발표라는 말조차 넣을 수가 없어 ‘개신교 목사님 기도’라고 표기했다.
문익환은 북간도 명동촌에서 벗 윤동주와 함께 성장했던 것을 일생의 자랑으로 여겼다. 그는 또한 독립군으로 활약한 벗 장준하와 한 하늘을 이고 있는 것을 무한한 자부심으로 삼고 있었다. 그는 그 무렵 공동성서 번역에 매진하고 있었다. 그는 이 대업을 이루기 위해 침식을 잊을 정도였다.
하지만 1972년 유신헌법이 선포된 뒤부터는 신학자로서 성서 번역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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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실천문학》 으로 등단. 시집 《회색빛 베어지다》 《눈물의 깊이》 《풍찬노숙》, 인물이야기 《윤이상》 《김득신》 《백석》 《백동수》 《황병기》 《나는 윤이상이다》 《나는 강감찬이다》 등. 《윤이상 평전: 거장의 귀환》으로 제3회 롯데출판문화대상 본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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